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KIA 타이거즈 출신으로 일본 무대 점령에 나섰던 외국인 우완 다니엘 리오스(36. 전 야쿠르트)와 세스 그레이싱어(33. 요미우리)의 2008시즌이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요미우리의 주축 선발투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그레이싱어는 지난 5일 도쿄 메이지 진구구장서 벌어진 야쿠르트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 8이닝 동안 5피안타 4삼진 무실점으로 시즌 14승(8패, 6일 현재)째를 올렸다. 그레이싱어는 이날 승리로 센트럴리그 다승 부문 단독 선두에 오르는 동시에 지난 1961년 데뷔 2년 간 32승을 따낸 조 스탠커(당시 난카이) 이후 47년 만에 '첫 2년간 30승' 외국인 투수가 되는 기염을 토했다. 반면 지난 시즌 두산 베어스 소속으로 22승 5패 방어율 2.07을 기록하며 투수 부문 3관왕(다승, 방어율, 승률-8할1푼5리) 타이틀을 차지한 뒤 야쿠르트로 이적한 리오스는 금지약물 검출로 인해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리오스는 지난 6월 2일 2군으로 떨어지기 전까지 2승 7패 방어율 5.46을 기록하는 데 그치며 다카다 시게루 감독의 기대에 어긋났다. 리오스의 방출 이후 에이전트 크리스 판타는 지난 7월 '리오스가 복용하고 있던 건강보조제의 성분분석 검사를 실시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치며 1년 간 출장 정지 처분 경감을 시도했으나 이는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성적면에서 기대에 못 미쳤던 리오스는 금지약물 복용으로 인한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사실상 야구 인생을 접게 되었다. 리오스와 그레이싱어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마치 '운명의 장난'과도 같았다. 지난 2005년 6월 KIA가 당시 6승 10패 방어율 5.23을 기록하는 데 그친 리오스를 두산으로 방출한 뒤 대체자로 뽑은 투수가 바로 그레이싱어다. 리오스의 부진이 아니었다면 그레이싱어의 한국행은 조금 더 뒤로 미뤄졌을 가능성이 컸다. 중지와 약지 사이를 조금 더 벌리며 낙차가 큰 서클 체인지업을 던진 그레이싱어는 2006시즌 14승 12패 방어율 3.02를 기록하며 KIA 투수진에 힘을 보탠 뒤 2007시즌 야쿠르트의 새로운 외국인 투수가 되었다. 같은 해 리오스는 233이닝을 던지며 방어율 2.90을 기록하고도 16패(12승)로 리그 최다패 투수가 되는 불운을 곱씹었다. 1년 연봉 4800만 엔으로 일본 내에서는 비교적 저렴한 몸값에 계약을 체결했던 그레이싱어의 야구 인생은 이후 급속도로 달라졌다. 그는 지난 시즌 16승 8패 방어율 2.84의 기록으로 리그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하는 동시에 야쿠르트 선발진을 외롭게 지탱했다. 2007시즌 후 그레이싱어는 2년 간 총 5억 엔의 '돈세례'를 맞으며 요미우리로 이적했다. 리오스의 2007시즌 활약 또한 찬란했다. 경기 초반 145km에 못미치는 직구와 역회전볼로 쉬운 투구를 펼친 뒤 경기 후반 150km를 상회하는 직구를 던지며 리그를 압도했던 리오스는 오릭스, 야쿠르트의 치열한 영입 경쟁 끝에 2년 3억 엔에 계약을 체결하며 그레이싱어의 대체자로 야쿠르트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2005년과는 입장이 정반대로 뒤바뀐 리오스와 그레이싱어였다. 2008시즌 그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선보이며 다른 길을 걸어갔다. 시즌 초 다소 고전하며 '무용론(無用論)'에도 이름을 올렸던 그레이싱어는 시간이 갈 수록 볼끝에 힘이 붙는 모습을 보여주며 거인 선발진의 핵으로 떠올랐다. 직구 구위가 살아나면서 포크볼 못지 않은 큰 낙차를 자랑한 주무기 서클 체인지업도 홈플레이트 앞에서 춤을 췄다. 지난 7월에는 4승 무패 방어율 0.99를 기록하며 7월 투수 부문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반면 리오스는 떨어지는 변화구가 없다는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 채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리오스의 주무기는 슬라이더와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140km대 초반의 역회전 볼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 내에서도 많은 투수들이 구사했던 구질이다. 과거 8,90년대 사이토 마사키(전 요미우리), 가토 신이치(전 긴테쓰)등이 역회전볼을 앞세워 명성을 떨친 바 있으며 주니치의 에이스 가와카미 겐신(33) 또한 최근까지 역회전볼을 자주 구사했다. 한국 무대서는 다소 생소했던 역회전볼이었기 때문에 리오스가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으나 일본에서 이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여기에 셋 포지션서 바로 투구에 들어가는 리오스의 스타일 상 보크 규제가 상대적으로 엄격한 일본서 적응해내기 어려웠다. 2004년까지만 해도 이중 동작 등 보크에 관대한 입장이었던 일본은 국제 야구 룰이 적용되었던 아테네 올림픽서 동메달로 고배를 마신 이후 투수들의 투구 동작에 많은 제약을 가했다. 투구 리듬을 잃어버린 리오스는 11경기서 2승을 따내는 데 그친 뒤 도핑 테스트 결과 금지 약물의 일종인 하이드록시스타노조롤(hydroxystanozorol) 검출로 사실상 일본 야구계를 완전히 떠나게 되었다. 국내 무대서 성실한 자세와 성품, 뛰어난 실력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리오스였기에 대한 해협 건너 전해 온 그의 금지약물 검출 소식은 커다란 충격파를 전해주었다. '재팬 드림'을 휘황찬란하게 그려내고 있는 그레이싱어와 이미지에 커다란 손상을 입으며 사실상 야구 인생을 접게 된 리오스. 그레이싱어의 활약이 더욱 눈부시게 빛날 수록 반대편의 리오스는 더욱 어두운 모습으로 야구 팬들의 뇌리에 자리잡고 있다. farinelli@osen.co.kr 리오스-그레이싱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