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세웠던 목표였다". '꾸준함의 대명사' 전준호(39, 히어로즈)가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세웠던 2000안타 목표를 이뤘다. 전준호는 11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원정경기에 좌익수 겸 톱타자로 선발 출장, 두 번째 타석이던 3회 2사 주자없는 가운데 상대 선발 손민한의 137km짜리 바깥쪽 투심을 밀어쳐 깨끗한 좌전안타를 뽑아냈다. 삼성 양준혁에 이은 프로 사상 두 번째 2000안타. 사직구장을 찾은 야구팬들은 홈 선수 못지 않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전준호의 대기록을 축하했다. 비록 최초가 아닌 두 번째 기록이지만 18시즌 동안 변함없이 그라운드를 누볐기에 가능했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하다. 전준호는 전날까지 3할2푼3리의 시즌 타율을 기록해 타격 부문 7위에 랭크돼 있다. 통산 2할9푼2리의 타율과 통산 544개의 도루의 성적이 말해주듯 이미 한국프로야구의 레전드다. 지난 1991년 4월 5일 첫 안타 이후 6370일이 걸린 결과물이었다. 전준호는 경기 후 "사직구장에서 선수 생활 중 가장 의미있는 선물을 갖고 가는 듯 하다"며 "2000안타를 확인하고 양쪽 덕아웃과 관중석을 둘러보니 모두 기립박수를 쳐주고 있더라. 가슴이 먹먹했다. 짧은 시간 동안 그 동안 야구했던 시간들이 스쳐지났고 지금까지 후원해준 사랑하는 가족들과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다. 또 전준호는 "2000경기 출장, 500도루와 함께 꼭 이루고 싶었던 2000안타를 달성해 선수생활 중 더 이상 목표는 없을 것 같다"면서 "언제까지 선수생활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받기만 했다면 이제는 후배들에게 배푸는 모습 보여주는 선배로 선수생활을 이어가겠다. 올 시즌을 마친 후 새로운 목표를 세워 다시 최선의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홈팬에게 미안하다 전준호는 "기쁘면서도 홈팬들에게 미안하다. 목동구장에서 홈팬들에게 기쁨을 드렸어야 하는데 기회를 잡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내가 몸담았던 롯데팬들 앞에서 기록을 달성한 것도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광환 히어로즈 감독은 당초 "전준호의 기록은 무조건 홈팬들 앞에서 작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러나 추석 연휴에 신문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곧바로 수정, 이번 롯데와의 3연전에 전준호를 꾸준히 투입할 것을 결정했다. 이날 경기는 전준호는 물론 롯데팬들에게도 뜻 깊었다. 전준호는 지난 1991년 롯데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고 1996년까지 부동의 톱타자로 맹활약했다. 전날에는 롯데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1992년에 세운 구단 한 시즌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돌파한 날이었다. 열광적인 부산팬들의 함성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아두고 있을 전준호다. 전준호는 지금은 사라진 현대로 팀을 옮긴 후 지금까지 그런 열광적인 분위기를 경험하지 못했다. 그런 만큼 이날 전준호의 기록 달성 때 보내준 팬들의 함성은 오랜만에 베테랑 타자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후배들을 위해 "지난 시즌을 마치고 한화 (송)진우형, 삼성 (양)준혁이와 함께 만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진우형이 내게 '꼭 달성하라'고 말해줬고 준혁이도 '형님, 꼭 하셔야 합니다'라고 격려해줬다. 그리고 2000클럽을 만들어보자고 합의했다". 전준호의 2000안타는 개인의 금자탑 이상의 상징을 지니게 됐다. 전준호는 지난 시즌을 마친 후 프로야구 레전드의 상징인 송진우, 양준혁과 함께 자리를 했다. 그 자리에서 '200-2000클럽'에 대한 의미있는 기획을 내놓았다. 전준호는 "2000안타 클럽을 만들자는데 의견일치를 봤다. 그래서 후배들이 우리 뒤를 이어 이 기록을 넘어설 때마다 뭔가 의미있는 대우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구체적인 기획을 한 상태"라고 밝혔다. 단지 개인만의 타이틀이 아니라 후배들에게 목적의식을 심기 위해 제도적인 이정표를 세우겠다는 뜻이다. 투수 송진우는 200승-2000탈삼진을 기획하고 있다. ▲고비도 있었다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준호는 1997시즌을 앞두고 문동환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에서 현대 유니폼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대접받았던 전준호는 "어쩔 수 없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롯데를 떠나리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준호는 1997시즌 2할4푼7리로 트레이드 충격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다. 그러나 전준호는 1998시즌 다시 방망이를 곧추 세웠다. 3할2푼1리의 타율(타격 2위)에 골든글러브까지 거머쥐며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그리고 2005시즌을 마친 후 두 번째 고비를 맞았다. 팀이 세대교체 작업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전준호는 2005시즌 2할6푼6리의 타율에 18도루로 눈에 띄게 힘이 떨어진 모습이었다. 전준호는 당시 상황에 대해 "큰 위기감을 느꼈다. 선수로 남을 것인지 은퇴한 뒤 코치생활을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며 "하지만 스스로 납득할 수 없었다. 한 해만 더 해보고 안되면 정말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2006시즌 전준호는 선발 라인업에 들지 못했다. 완전 붙박이 선발로 인정받지 못했다. 2할8푼7리의 타율이었지만 2년 연속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다. 결국 구단의 눈치를 봐야했다. 전준호는 2007시즌을 앞둔 캠프에서 자신이 비주전급으로 소외돼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곧바로 새롭게 사령탑으로 선임된 김시진 감독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지금까지의 과거는 다 잊고 어린 선수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조건을 만들어달라. 그 후 경기력에서 뒤진다고 판단될 때 결정을 내려달라". 전준호의 절박함은 김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다. 전준호는 "베테랑에게 기회를 주신 김시진 감독님에게 너무 감사하다. 분명 구단에서 압박이 있었을텐데도 아무말없이 공정한 조건에서 뛸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전준호 2000안타 일지 첫 안타 : 1991년 4월 5일 대구 삼성전(데뷔 첫 경기) 100안타 : 1992년 4월 4일 사직 OB전 500안타 : 1995년 6월 28일 대구 삼성전 1000안타 : 1999년 8월 14일 대구 삼성전 1500안타 : 2004년 4월 11일 광주 KIA전 1900안타 : 2007년 10월 4일 수원 SK전 2000안타 : 2008년 9월 11일 사직 롯데전 letmeout@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