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픽션이지만 그 픽션의 소재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면 체감하는 바가 달라진다. 영화 속 이야기를 마냥 허구라고만 볼 수도 없는 문제. 영화를 보면서 극단적인 영화 속의 소재가 실제로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현실을 고민하게 한다. 웃을 수만은 없는 추석 코미디 ‘울학교 이티’ 추석 코미디의 귀환이라고 하는 ‘울학교 이티’(박광춘 감독)를 보고 웃을 수만은 없다. 김수로의 슬랩스틱, 스승과 제자간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뒤에 학교 학원가를 둘러싼 우리의 현실을 담고 있기 때문. ‘울학교 이티’는 치열한 입시 전쟁으로 혹사당하는 아이들과 메마른 학교의 현장을 보여준다. 극중에서 학생들은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는 쉬는 곳”이라고 당당하게 담임선생님한테 말을 하고 공공연하게 선생님들을 무시한다. 극중 김수로가 맡은 천성근은 본래 체육교사. 하지만 학교 측에서는 부녀회의 독촉에 못 이겨 체육선생을 자르고 영어선생으로 대체를 강행한다. 수학능력시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체능 과목을 홀대하고 그에 대한 학생들의 배움의 기회를 뺏는 극단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다. 또한 부녀회장의 아들이라서 사립학교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기도 하고 부녀회는 시시때때로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의 교육에 지나칠 정도로 개입한다. 권력을 휘두르는 부녀회와 그 앞에 쩔쩔매는 학교를 보며 학생들은 학교와 공부 모든 것에 점점 냉소적으로 변해간다. 다른 한편 한 여고생은 사립명문고등학교를 다니지만 실제 너무 가난한 현실 앞에 좌절한다. 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어머니를 두고 작은 슈퍼를 운영한다고 속일 수 밖에 없는 여고생의 모습이다. 이 여고생은 극한의 심리상태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원조교제를 시도하기도 한다. 은둔형 외톨이의 슬픈 복수극 ‘외톨이’ 공포 스릴러 장르를 표방하는 ‘외톨이’(박재식 감독)는 공포스러운 화면으로만 무서운 것이 아니다. 동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가운데 그 한 켠의 모습을 담아내 섬뜩함을 자아내고 있다. ‘외톨이’는 평범한 한 여고생이 갑작스럽게 히키코모리가 되면서 드러나는 가족의 비밀과 그녀의 슬픈 복수를 다룬다. 아직 관객들에게 낯선 히키코모리를 공포와 접목시켰다. 히키코모리는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1990년 중반 은둔형 외톨이들이 나타나면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히키코모리는 사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히키코모리의 살인사건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 사례가 있다. 히키코모리 증상을 보인 한 30대 남성이 한 시청 민원실에 난입해 여성 공무원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나 세상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그의 살인 동기는 ‘오직 세상이 싫다’였다. ‘외톨이’의 박재식 감독은 “우리나라에도 언젠가는 히키코모리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3년 전부터 이 영화를 준비했다. 사회적으로 은둔형 외톨이가 많아지면 안되겠지만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입장으로 이슈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외톨이’는 히키코모리 증상을 앓고 있는 수나(고은아)가 점점 피폐해가고 폭력적으로 돌변해가는 극한의 상황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둘러싼 문제들도 함께 제기하고 있다. 극중 수나의 단짝 친구 하정(이다인 분)은 청각장애인 어머니를 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인물. 그녀는 같은 학교의 여고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폭력을 당한다. 급기야 하정에게 도둑질까지 시키며 그녀를 극단의 상황으로 몰고, 하정은 등교를 거부하고 방에만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급기야 그녀는 자살을 선택한다. 또 다른 한 여고생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 늘 학대 받는 어머니를 보며 복수심과 폭력성을 키우게 되고, 급기야 자신이 아버지의 친 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될 때는 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게 된다. 물론 영화는 현실의 극단적인 면을 내세운다. 하지만 일면 그런 극단의 모습이 다른 한 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중 누군가에게 실제 벌어지고 있는 사례일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 crystal@osn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