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탱크' 박지성(2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약팀 킬러'라는 오명을 벗어 던졌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 선수 중 하나로 떠오른 박지성에게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있었다. 바로 약팀 킬러였다.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 라이언 긱스, 나니 등의 팀 동료들과의 로테이션에 따라 주로 약팀을 상대했던 박지성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했다. 특히 지난 5월 UEFA 챔피언스리그 첼시와의 결승전은 박지성이 팀 내서 차지하는 위상의 한계를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시 박지성은 선발 출전이 예상됐지만 출전 명단에도 오르지 못하며 밤을 새워 기다리던 한국 축구팬에게 허망함을 남겼다.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애초 결승전 구상에는 박지성이 아닌 오웬 하그리브스가 있었다는 고백을 남기기도 했다. 박지성이라고 실망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나 박지성은 더욱 노력하겠다는 말과 함께 실망이 아닌 기다림을 선택했다. 감독의 신뢰를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조급한 마음이 아닌 꾸준한 노력 속의 기다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지성이 지난 7월 고국을 떠나며 남긴 부상 없이 한 시즌을 무사히 보내겠다는 각오에는 이런 속내가 묻어 있었다. ▲ 동등한 주전경쟁 구도 속 기분 좋은 첫 출발 그리고 박지성의 노력은 지난 21일(이하 한국시간) 밤 런던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열린 첼시와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4라운드에서 일궈졌다. 당초 18일 비야레알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 선발 출전하며 결장 가능성이 높았던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의 신뢰 속에 첼시전에 출전했다. 그리고 지난 3월 2일 풀햄전에서 터트린 골에 이어 203일 만에 골을 터트리며 환호했다. 박지성의 활약 속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첼시 원정에서 1-1로 비기는 만족스런 결과를 맛봤다. 박지성은 비록 후반 30분 존 오셰이와 교체되며 풀타임에는 실패했지만 경기 MVP에 선발되는 기쁨을 누렸다. 박지성의 또 다른 기쁨은 이날 활약으로 동등한 주전경쟁 구도 속에서 기분 좋은 첫 출발을 시작했다는 데 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박지성은 호나우두, 나니 등 경쟁자들에 비해 저조한 득점력으로 보이지 않는 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박지성이 출전한 경우 전체적인 주도권에서는 우위에 설 수 있지만 득점력이 떨어진다는 현지 언론의 지적도 뼈아팠다. 그러나 이 날 활약으로 박지성은 더 이상 그런 편견에서 자유롭게 됐다. 현지 언론은 박지성의 활약에 '지칠 줄 모르는 활약과 상대를 괴롭히는 임무를 수행했다'는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 승리를 부르는 사나이, 박지성 하지만 정작 박지성에게 소중했던 것은 골도 MVP도 아닌 퍼거슨 감독의 신뢰 회복이었다. 그동안 첼시 등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박지성을 제외했던 퍼거슨 감독은 호나우두가 막 부상에서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나니 등 다양한 공격 카드가 있었지만 박지성을 선택했다. 퍼거슨 감독이 더 이상 박지성을 약팀 킬러가 아닌 강팀 킬러로 생각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어느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지 4번째 시즌을 맞은 박지성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다. 박지성의 별명 중 하나는 ‘승리를 부르는 사나이’다. 박지성이 선발 출전한 대부분의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승리하며 만들어진 기분 좋은 별명이다. 그리고 퍼거슨 감독의 마음 속에는 승리를 부르는 사나이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리그 3연패 및 UEFA 챔피언스리그 2연패의 주역이 되길 바라는 소망이 조금씩 담겨지고 있는 듯하다. stylelomo@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