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의 열정이 만든 '탬파베이 신화'
OSEN 기자
발행 2008.09.24 06: 50

[OSEN=애틀랜타, 김형태 특파원] 자신을 야유한다고 팬에게 욕설을 퍼붓는 구단주. 전용 화장실을 마음대로 썼다고 기자를 쫓아내는 구단주. 만년 꼴찌팀 탬파베이에는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떨어지지 않았다. 언제나 바닥권인 팀성적에 초대 구단주 빈스 네이몰리의 기행이 덧붙여진 결과 플로리다 중부에 자리잡은 이 팀은 메이저리그의 '놀림감'이었다. 그런 탬파베이가 창단 10년 만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매년 100패를 바라보던 구단이 100승 가까이 올리면서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파란만장한 탬파베이 10년 역사의 전환점은 2006년 구단 지배구조가 바뀌면서 찾아오기 시작했다. 네이몰리 시절의 암흑기 초대 구단주이자 지역 사업가인 네이몰리 시절 탬파베이는 '화제의 구단'이었다. 바닥을 기는 성적은 둘째치고 구단주 답지 않은 네이몰리의 행태는 지역의 놀림감이었다. 구단 로고와 사진을 허락없이 썼다며 관련 기업과 공관에 무차별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투자를 하지 않는다"며 짠돌이라고 비난하던 한 팬에게 달려가 온갖 욕설과 협박을 늘어놓아 조소를 받았다. 취재차 트로피카나필드를 찾은 한 일본 기자가 무심코 사용한 화장실이 자신의 전용 화장실이라며 해당 기자를 쫓아내더니 "너는 영구 출입 금지야"라고 소리쳐 주위를 아연실색케 한 인물이었다.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는 성적, 늘어나지 않는 관중, 언제나 바닥권인 매출액에 질린 그는 2004년 5월 뉴욕 출신 투자자 스튜어트 스턴버그에게 구단 지분 48%를 넘기고 물러났다. 탬파베이에 서광이 비치지 시작했다. 스턴버그 체제의 등장 세인트존 대학을 나와 뉴욕의 투자 그룹 '스피어 리즈 앤 켈로그'에서 경력을 쌓은 스턴버그는 전형적인 월가 비즈니스맨이다. 명석한 두뇌와 재빠른 판단능력으로 입지를 넓혀가던 그는 급기야 파트너로 올라섰고, 회사를 골드만삭스에 매각하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손에 쥐었다. 스턴버그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구팬이다. 회사 매각 후 전세계에 300여명 밖에 없는 골드만삭스 파트너로 일하면서도 같은 팀 부하직원이던 맷 실버맨과 짬을 내 판타지리그를 즐겼다.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와 미드맥 캐피털에서 일하던 야구선수 출신 앤드루 프리드먼도 이들과 함께 어울렸다(요즘 월가에는 운동 선수 출신이 많다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잠재력이 뛰어난 유망주 이름을 줄줄이 외울만큼 이들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마니아였다. 탬파베이 인수, 그리고 변화 분주한 월가의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던 이들은 어느날 흥미로운 뉴스를 접한다. 메이저리그 야구팀이 매물로 등장했다는 내용이었다. 플로리다 세인트피터스버그에 자리 잡은 탬파베이를 인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프리드먼이 스턴버그를 부추겼고, 스턴버그는 책을 쓰겠다며 텍사스 집에 머물러 있던 실버맨을 찾았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곧바로 매입 계획에 착수했다. 스턴버그를 비롯한 스피어 리즈 & 켈로그의 전직 파트너 6명이 네이몰리로부터 구단 지분을 사들이기로 했다. 인수가는 6000만 달러가 채 안 됐다. 구단주로 취임한 스턴버그는 곧바로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자신의 오른팔인 실버맨을 사장에 앉힌 뒤 구단의 초대 단장이자 성적 부진의 책임이 큰 척 라마를 해고하고 단장직을 없앴다. 대신 프리드먼을 운영 담당 부사장으로 임명해 구단 운영을 총괄케 했다. 탬파베이의 새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인텔리' 매든의 등장 구단을 장악한 이들은 새로운 감독을 물색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은 바비 발렌타인 지바 롯데 감독. 풍부한 경험과 카리스마, 그리고 동서양 야구를 망라한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의욕상실증에 걸린 탬파베이에 새로운 불꽃을 일으킬 감독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의외의 인물을 선택했다. LA 에인절스의 벤치코치인 조 매든을 구단 4대 감독으로 임명했다. 매든은 마이너리그에서 포수로 활약했을 뿐 메이저리그 경력이 없었다. 지도자로 변신해서는 에인절스 산하 구단에서 31년간 코치로 일한 게 경력의 전부였다. 정식 감독 경험 없이 96년과 99년 임시 감독을 맡았을 뿐이다. 그러나 스턴버그와 친구들은 그의 명석한 두뇌를 높이 샀다. 사립 기숙학교인 라파예타 대학 출신인 매든은 메이저리그 감독 가운데 가장 지적인 인물이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상황 판단 능력이 돋보인다. 특히 언론 상대 능력이 뛰어나 기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웬만해선 화를 내지 않는 '선수들의 감독'이기도 하다. 인터뷰시 현학적인 말투를 즐겨 사용하지만 그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엄지 손가락을 내민다. 언론 상대 능력에서 그는 빅리그 최고의 감독으로 꼽힌다. 숫자의 야구, 그리고 치솟은 성적 구단 개조 작업은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어차피 처음 몇년간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 첨단 금융공학에 마니아의 열정이 합쳐진 이들의 선택은 자명했다. 한정된 연봉총액 내에서 최상의 성과를 거두려면 유망주 발굴과 육성 뿐이었다. 타 구단에서 방치된 쓸만한 선수를 낚아채는 작업도 요구됐다. 그러자면 숫자의 야구가 필요했다. 통계를 기반으로 정확한 선수 평가 작업을 거쳐 필요한 자원을 최소의 지출로 끌어모아야 했다. 트로피키나필드 전광판에는 타자가 등장할 경우 OPS, 투수가 등판하면 WHIP 수치가 등장한다. 관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인트피터스버그의 노인들이 이 숫자를 얼마나 이해할지는 의문이지만 경영진의 운영 방식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좋은 증거물이 없다. 월가나 야구나 '숫자놀음'으로 굴러가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프리드먼은 그해 6월 드래프트에서 최대어 에반 롱고리아를 1번으로 지명했다. 제2의 알렉스 로드리게스'로 불린 그는 불과 1년 만에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을 바라볼 만큼 성장했다. 그해 여름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서재응과 포수 디오네르 나바로를 LA 다저스에서 트레이드했다. 나바로는 올해 아메리칸리그 올스타로 선정됐다. 2007년을 앞두고는 아시아 시장을 노리고 이와무라 아키노리를 영입했고, 보스턴에서 버림 받은 1루수 카를로스 페냐를 확보했다. 이와무라는 팀의 붙박이 1번타자 겸 2루수로, 페냐는 잘 알려졌다시피 리그에서 손꼽히는 1루수로 성장했다. 여기저기서 주워모은 불펜진은 1년 만에 리그 최고 수준이 됐다. '최소의 지출로 최대의 성과를 노린다'는 비즈니스맨 다운 전략이 꽃을 피운 것이다. 이들이 끌어모은 선수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부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상대적인 무명들이다. 2008년은 다른 구단이 버린 인재들을 고르고 골라 돌은 버리고 옥만 취한 결과가 한껏 빛난 해였다. 창단 첫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결과는 스턴버그 식구들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은 숙제, 탬파베이 야구의 앞날 스턴버그의 전략적인 움직임은 지금까지 뚜렷한 결실을 맺었다. 새 구장 건설이라는 야심을 거의 이루었고, 약체 이미지를 탈피해 강한 야구팀이라는 인식을 심는데도 성공했다. 그러나 단 하나. 저조한 관중수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최고의 한 해를 보냈지만 탬파베이 홈경기의 평균 관중수는 2만 2300여명에 불과하다. 빅리그 30개 구단 가운데 26위다. 성적이 오르면 관중이 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지리적인 불리함(트로피카나필드는 주민이 가장 많은 탬파 시내에서 약 1시간 가량 떨어져 있다), 열세를 면치 못하는 지역의 야구 열기(플로리다는 풋볼의 천국이다)가 주요인으로 꼽히지만 결국 '탬파베이 레이스'라는 브랜드가 아직 먹혀들지 않는다는 증거다. "투자의 제일 법칙은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라는 신념의 보유자인 스턴버그는 "올해의 투자(좋은 성적)는 내년부터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누구도 "오늘 레이스가 이겼어"라고 얘기하지 않는 탬파베이에서 스턴버그의 마지막 숙제가 해결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workhors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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