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잠수함 투수들이 몰락했다. 하지만 음지에서 묵묵히 뜨고 있는 잠수함도 있다. 다름 아닌 한화의 ‘마당쇠’ 마정길(29)이다. 올 시즌 프로야구의 두드러지는 현상 중 하나는 잠수함 투수들의 몰락이다. 지난해 잠수함 전성시대가 열리는 듯했으나 한 시즌 만에 가라앉고 있다. 지난해 잠수함 투수들은 도합 58승59패79세이브69홀드 방어율 3.57을 기록했다. 무려 1072⅔이닝을 소화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정대현(SK)·우규민(LG)은 마무리투수로 좋은 활약을 펼쳤고 조웅천(SK)·임경완(롯데)·조용훈(현대)·임창용(삼성)·신용운(KIA) 등이 불펜 에이스이자 핵심계투로 위치했다. 그러나 올 시즌 잠수함 투수들은 도합 27승39패55세이브67홀드 방어율 3.82로 지난해와 비교하면 떨어지는 성적을 내고 있다. 투구이닝도 681⅔이닝으로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떨어졌다. 정대현이 부상으로 지난해만큼 위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우규민은 부진으로 마무리에서 탈락했다. 마무리로 기대를 모은 임경완은 실패작이 됐다. 조웅천과 조용훈도 나쁘지 않지만 비중이 지난해만 못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마정길이 올 시즌 최고 잠수함 투수로 떠오르고 있다. KIA 유동훈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지난 23일 문학 SK전에서 마정길은 선발 류현진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후반기 류현진이 선발등판한 경기에서는 꼬박꼬박 휴식을 취했지만 이날은 달랐다. 하지만 지난 17일 대전 롯데전을 끝으로 5일간의 휴식기가 있었던 만큼 문제없었다. 3⅓이닝 1피안타 무사사구 3탈삼진 무실점으로. 9회 1사 후 송진우에게 마운드를 넘기기 전까지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펼쳤다. 한화의 후반기 첫 2연승의 결정적인 디딤돌을 놓는 순간이었다. 최고 138km 직구와 떨어지는 싱커·체인지업으로 SK 타자들을 요리했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마정길에게 주어진 기록은 아무 것도 없었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한 바람에 홀드 요건이 성립되지 않았다. 올 시즌 내내 비슷한 패턴의 반복이었다. 리드하고 있을 때보다 동점 상황이나 근소하게 뒤질 때 등판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마당쇠였다. 하지만 마정길은 아주 열심히 그리고 깨끗하게 빗자루질하며 청소했다. 61경기에서 1승1패2세이브6홀드밖에 되지 않지만 88⅔이닝을 소화하며 방어율 3.05를 기록했다. 이닝당 출루허용률은 1.04이며 피안타율도 2할5리에 불과하다. 탈삼진은 64개. 잠수함 투수 가운데에서는 유동훈이 경쟁자라 할 수 있다. KIA의 승리계투조로 활약한 유동훈은 52경기에서 6승3패2세이브8홀드 방어율 3.72를 기록했다. 이닝당 출루허용률은 1.10이고 피안타율은 2할4푼. 그러나 탈삼진이 37개로 떨어진다. 하지만 후반기 마정길의 활약이 워낙 인상적이다. 마정길은 후반기 한화의 21경기 중 무려 17경기에 구원등판했다. 특히 9월 12경기에서는 2홀드에 1점대(1.71) 방어율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올 시즌 잠수함 투수 중에서 마정길이 단연 돋보이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마정길은 “팀을 위해 마운드에 올라 매이닝 던지다 보니 어떻게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데뷔 후 최다이닝을 소화하고 있는 만큼 체력적으로 지칠 법도 하다. SK전 승리 이후 마정길은 “감기에 걸려 힘들었지만, 팀이 이기기 위해 던져야 하기 때문에 참고 던졌다”고 웃어보였다. 하지만 마정길은 “감독님한테 신뢰를 받아 어떤 일이든 경기에 나가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원래부터 목표였다. 아직 많이 배워야 한다”고 겸손을 잃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들고 피곤한 시즌이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는 마정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