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소개]‘천년 고독을 견딘 고목’ 대목장 신응수
OSEN 기자
발행 2008.09.25 18: 07

“한옥은 적송으로 짓는다. 좋은 적송을 구하는 사람이 좋은 건축을 하는 거다.” “옛날 그대로 따라간다는 원칙으로 다시 짓는다.” 뿌리가 깊은 중요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 신응수의 전통건축에 대한 신념이 담겨있는 말이다. 그는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마치고 17세 때 사촌형 손에 이끌려 한옥 건축 현장에서 망치질을 배우면서 목수 일을 시작했다. 1970년 스물아홉 되던 때 불국사 복원공사에서 이광규 대목으로부터 ‘먹을 그으라’는 말을 처음 들었고, 코끝이 시큰거려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33세 때 수원성 공사의 도편수가 된 그는 창덕궁과 경복궁, 청와대 상춘재 등 한국의 대표적 건축물 중건·복원 공사 도편수를 맡는 ‘우리 시대 최고의 목수’가 되었다. 신응수 선생은 우리나라 대목(大木)들의 정통 계보를 잇는 인물로 경복궁 중건에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홍편수 대목, 최원식 조원재 이광규 대목을 거쳐 전통의 맥을 잇는다. 50여 년간 국가의 병든 고건축물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작품이 없을 정도다. 많은 건축물 중에 그가 최고로 치는 것은 2000년 중수 공사를 했던 근정전이다. 그는 근정전 공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털어놓는다. 하나하나 뜯어가며 건물 내부를 실제로 보니 130여 년 전 옛날 비법들이 한눈에 들어왔다는 것. 근정전 공사를 맡은 것을 “목수로서 최대의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그는 앞으로 남은 경복궁 복원 중 최대의 고비는 ‘광화문 복원’이 될 것이라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의 신응수 선생은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중요 무형문화재가 된 해부터 18년째 경복궁 복원공사에 모든 것을 다 쏟아내고 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놔 제 모습을 찾게 할 작정이다. 광화문이 처음 세워진 태종 때나 다시 중건된 고종 때처럼 홍예문과 근전정이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고종 그 당시의 제 위치에 지어진다. 10/2~10/31까지 흥례문 화랑에서 광화문 관련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그의 속을 시커멓게 태운 일도 최근에 있었다. 지난 2월 숭례문이 불에 탔을 때 심장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던 신응수 선생이다. 지난 1962년 스승을 쫓아 숭례문의 중수 공사에도 참여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몇 시간을 아무 것도 못하고 숭례문이 무너지는 광경을 봐야했다. 천년고독을 지키고 있는 대목장의 망치소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jin@osen.co.kr 중요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 신응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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