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애틀랜타, 김형태 특파원] 아메리칸리그 우승을 놓고 전통의 명문 보스턴 레드삭스와 다투게 된 탬파베이 레이스에는 확실한 병기가 있다. 리드하고 있는 경기 후반이면 어김 없이 등판해 철벽 같이 상대 타선을 틀어막는 '호주산 미사일' 그랜트 발포어(31, Grant Balfour)가 주인공이다. 탬파베이는 올 정규시즌에서 보스턴과 18번 만나 10승 8패를 기록했다. 보스턴이 상대 전적에서 열세를 보인 구단은 LA 에인절스와 탬파베이 뿐이다. 객관적 전력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탬파베이다. 시즌 초반 펜웨이파크 경기에선 제임스 실즈와 코코 크리스프의 주먹싸움이 일어날 만큼 라이벌 의식도 팽배하다. 여기에 플레이오프의 중압감, 열기를 감안하면 7전4선승제의 시리즈 내내 박빙의 승부가 예상된다. 마쓰자카 다이스케-조시 베켓-존 레스터-팀 웨이크필드와 실즈-스캇 캐즈미어-맷 가자-앤디 소낸스타인으로 맞서는 양팀 선발로테이션을 감안하면 승부는 매 경기 후반에 결판날 공산이 크다. 다시 말해 '불펜 싸움'에서 웃는자와 우는자가 갈릴 전망이다. 불펜 싸움이라면 탬파베이가 보스턴에 뒤지지 않는다. 마무리를 제외하면 중간계투는 비교 우위를 점하고 있다. 탬파베이 불펜의 핵심이 다름 아닌 발포어다. ▲시련의 마이너리그 1977년 호주 시드니에서 태어난 발포어는 탬파베이에 너무 잘 어울리는 선수다. 지옥에서 천당으로 솟아오른 그의 야구 인생은 꼴찌에서 우승을 바라보는 '레이스 신화'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97년 미네소타 트윈스와 계약하며 미국 무대에 진출한 발포어는 그저 그런 마이너리거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루키리그와 싱글A를 2년씩 경험하며 입단 4년 만인 2001년에야 더블A에 올랐다. 원래 선발투수였던 그는 그해 구원투수로 전업해 35경기에서 방어율 1.08을 기록했다. 곧바로 트리플A로 승격됐고, 시즌 후반 메이저리그 데뷔까지 이루었다. 2003년과 2004년에는 빅리그에서 합계 53경기에 등판하며 입지를 굳혀갔다. 여기까지는 성공기였다. 그러나 '이제 됐다' 싶은 순간 찾아온 부상의 덫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어깨 수술로 2005년을 통째로 거른 뒤 팀에서 방출됐고,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신시내티에 합류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이듬해 루키리그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해 10월에는 웨이버 공시돼 밀워키로 둥지를 옮겼다. 2007년 트리플A까지 올라섰지만 빅리그의 관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전형적인 마이너리그 저니맨의 길을 밟았다. 그런 그를 탬파베이는 눈여겨 보고 있었다. 앤드루 프리드먼 부사장이 직접 나서 지난 시즌 중반 트레이드를 실시했다. 한때 팀의 마무리였던 시드 매클렁을 내주고 발포어를 받아들였다. 레이스에 합류한 지난 시즌 성적은 22경기 1승 방어율 6.14. 올해 스프링캠프에선 방출대기 통보를 받고, 또 다시 짐을 쌌다. ▲탬파베이의 선택, 그리고 반전 FA를 선택하지 않고 더램(탬파베이 산하 트리플A)으로 순순히 향했다. 더램에서 15경기에 등판, 방어율 0.38을 기록하자 탬파베이는 그를 다시 찾았다. 5월29일 그의 계약을 사들이면서 25인 로스터에 포함시켰다. 그 때부터 발포어는 '슈퍼맨'으로 탈바꿈했다. 팀의 중간계투로 자리를 잡은 뒤 나가는 경기 마다 상대 타자들을 완벽하게 처리했다. 마이너리그 선발투수에서 불펜요원으로 전업한 96년 리그 최고 셋업맨으로 탄생한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 역시 선발에서 최고의 구원투수로 혜성처럼 등장한 지난해 자바 체임벌린이 연상되는 활약이었다. 첫 두 달을 결장했음에도 발포아가 거둔 성적은 입이 벌어질 수준이다. 51경기에 등판, 6승2패 4세이브 방어율 1.54라는 특급 활약을 펼쳤다. 58⅓이닝 동안 사민 82개를 잡았고, 볼넷은 24개만 허용했다. 발포어는 90마일 중반대의 공끝이 살아 있는 포심패스트볼과 역시 무브번트가 실여 있는 하드싱커를 주무기로 삼고 있다. 싱커가 워낙 대단해 왼손 타자에게 특히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올 시즌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이 1할5푼9리. 좌타자들은 고작 1할2푼만 쳐냈다. 그가 등판하면 좌타자 상대 전문 구원 요원이 몸을 풀지 않는 이유다. 발포어는 생애 첫 플레이오프 무대에서도 완벽한 투구를 이어가고 있다. 디비전시리즈 3경기에 등판, 2피안타 4탈삼진 1볼넷으로 방어율 0을 기록했다. 선발 투수가 5이닝 이상만 버티면 출동하는 좌완 롱맨 J.P 하웰과 발포어 덕분에 탬파베이는 경기 후반 가장 무서운 팀으로 변한다. 베테랑 마무리 트로이 퍼시벌이 부상으로 빠졌지만 때로는 8회부터 2이닝을 책임져주는 발포어 덕분에 레이스의 불펜은 '철벽'으로 여겨지고 있다. ▲"내 이름은 삼진" 호주 출신 발포어가 연일 힘을 내자 모국 언론들도 그의 활약상을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여러 호주 언론이 "우리나라 출신 발포어가 월드시리즈를 바라보고 있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는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는 호주 출신이 3명 밖에 없다. 발포어와 피터 모일란(애틀랜타), 라이언 로랜드-스미스(시애틀)이 그들이다. 모두 팀에서 중간계투를 맡고 있다. 위력적인 구질에 흠잡을 데 없는 제구력, 여기에 마운드에만 서면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성격이 합쳐진 발포어는 보스턴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다. 수술 후 재기, 여러 구단을 거친 인생 유전, 방출 후 3차례의 방출이라는 역경을 딛고 정상급 구원투수로 재탄생한 발포어. 처음 접하면 웃음이 나오는 그의 이름은 '포볼(Ball four)이 아닌 삼진(Strikeout)'을 의미한다. workhors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