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1집을 낼 때는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갔어요. 세 명이서 ‘자전거 탄 풍경’을 하다가 둘이서 ‘나무자전거’를 시작하다 보니 부담이 갈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둘이서 하면서도 셋이 할 때의 에너지를 다 담으려 했으니…. 이번 2집을 만들면서 비로소 ‘나무자전거’만의 색깔 찾기가 시작됐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그런지 매우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남성 포크 듀오 나무자전거(강인봉, 김형섭)가 3년만에 정규 앨범을 냈다. ‘자탄풍’에서 송봉주가 빠지고 나무자전거가 탄생한 이후 선보인 2번째 정규 앨범이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기타를 치면서 대중과 호흡하고 있는 보기 드문 포크 듀오 나무자전거는 이번 음반에 많은 것을 담았다. 곡도 곡이지만 묵은 장맛이 나는 인생 철학이 듬뿍 담겨 있다.
3년 활동의 결정체, 15곡이 빼곡히
나무자전거의 2집 앨범은 일단 제작 방식이 독특했다. 가수들이 앨범을 만들어내는 일반적인 모습은 ‘앨범발표-활동-휴식-새 앨범작업’을 반복하는 구조였다. 앨범활동이 끝나면 휴식기를 가지면서 동시에 새 앨범 작업에 몰두하는 사이클이다. 하지만 나무자전거의 이번 앨범은 달랐다. 정규 1집을 내고 꾸준히 활동하면서 틈틈이 곡을 만들었고(물론 그 사이 싱글앨범도 한 장 발표했다) 그렇게 해서 모인 곡들을 한 장의 정규앨범에 담아냈다.
그러다 보니 정규 2집에는 무려 15곡이나 쌓였다. 네댓 곡 정도를 넣고 새 앨범이라고 들고 나오는 요즘 풍토와는 완전히 다르다.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만든 곡이 아니다 보니 저마다 독특한 색깔을 가졌고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철학도 풍부하게 담겨 있다. 그렇다면 나무자전거는 왜 이렇게 특별한 제작 방식을 택했을까?
망설였던 음반출시, 하지만 침묵하는 다수를 위해
“처음에는 정규 앨범을 내지 않으려고 했어요. 디지털 싱글로 끝낼까도 했었죠. 요즘 시장 상황을 뻔히 알잖아요. 하지만 생각을 바꿔 먹었어요. 나무자전거의 음악을 기억해 주고 좋아해 주는 팬들에게 접근성을 보장해 줄 필요가 있었어요. 30, 40대가 대부분인 그들은 어디선가 우리 음악을 접하고 마음에 들면 그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텐데 디지털 음원은 그들에게 여전히 어려운 경로가 될 것 같았어요. 언젠가 조용히 저희 음악을 찾을 침묵하는 다수를 위해 꼭 정규음반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음악 시장의 분위기 형성도 적극적인 소수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디지털을 선호하는 이 적극적인 소수는 침묵하는 다수에 비해 반응도 빠르지만 동시에 망각도 빠르다. 나무자전거가 추구하는 음악과는 사이클이 어긋나 있다. 침묵하는 다수의 반응속도를 위해 나무자전거의 오프라인 앨범은 꼭 필요했다.
실험과 본질의 이중주
앨범에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멤버들의 인생에 대한 관조가 들어있다. 강원도의 고즈넉한 시골분교에서 느낀 감성을 연주로 표현해 낸 ‘비천분교’ 속 ‘학교 종’은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정제하는 추억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천상병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나의 가난은’은 빠듯한 일상 속에서 잊어버렸던 삶의 여유와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 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음, 그런 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는 노랫말을 김형섭의 목소리로 듣고 있노라면 가슴 한 곳에서 아려오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
나무자전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렉트로닉과의 교감도 실험되고 있다. 타이틀곡인 ‘내가 사랑해’는 나무자전거 버전과 서영은의 피처링 버전 두 가지로 녹음됐다. 물론 서영은 버전이 일렉트로닉이다. 서영은과 화음을 맞춘 김형섭은 “후배 뮤지션이 편곡을 새로 했어요. 일렉트로닉이 도입되기는 했지만 나무자전거의 어쿠스틱 감성을 무시할 수 없어 기계적으로 세게 못 가겠더라고 하더군요. 이런 맛도 있구나 하고 편안히 즐겼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멤버 강인봉이 “천재 음악가”로 평가하는 김창완의 곡도 2곡이 수록됐다. ‘내가 갖고 싶은 건’과 ‘결혼하자’는 곡이 그것인데 확연히 느낌이 새롭다. 강인봉은 “역시 (김)창완이 형은 천재예요. 우리 느낌으로 편곡을 하긴 했지만 곡 자체가 워낙 좋아요. 하도 고마워서 녹음이 끝나고 낙원상가를 뒤져 기타를 하나 사서 선물했죠. 그랬더니 형이 고맙다고 홈페이지에다 글로 남겼더군요. 하하”라며 흐뭇해 했다.
음악 근본주의
이런 몇 가지 실험에도 불구하고 나무자전거의 2집 앨범에서 강조하고 있는 주제는 역시 ‘사랑’이다. 타이틀곡인 ‘내가 사랑해’는 연인을 위한 최고의 사랑노래가 될 듯하다. 사랑도 인스턴트가 돼 버린 세상이지만 그러기에 오히려 순수를 깨닫게 해 주는 곡이다.
곡을 쓴 강인봉은 “인간이 기계의 많은 도움을 받고는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기계에 종속돼서는 안되잖아요. 인스턴트 라면을 많이 먹다 보면 진짜 라면이 다 인스턴트인 줄 아는 그런 오류가 생겨요. 사랑이라는 것도 그렇죠. 온갖 사랑의 형식이 난무하고 있지만 역시 사랑의 근본은 순수죠. 내가 그 누군가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은 노래로 표현하는 것이 음악의 첫 출발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무자전거가 고집하고 있는 음악 근본주의는 철저히 기계에 종속되지 않는 소리다. 기계의 힘을 빌리기는 하지만 주종이 뒤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고집이다. ‘내가 사랑해’의 서영은 버전은 그런 면에서 실험성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나무자전거의 철학이 바뀐 것은 아니다.
100% 만족하는 앨범이면 당장 은퇴한다
정규 2집을 발매하는 느낌을 김형섭은 “1집보다는 나무자전거만의 색깔이 뚜렷해졌어요. 갈수록 조금씩 발전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첫 앨범에 100% 만족한 가수가 있다면 그 가수는 얼마나 불행했을까요”라며 껄껄 웃는다.
강인봉은 한 술 더 뜬다. “100% 만족하는 앨범이 나왔으면 바로 은퇴해야죠.” 나무자전거의 앙상블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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