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내리는 팀이 진다. 야구 전문가들은 포스트시즌처럼 매경기 결승전을 치르며 집중하는 경기에서는 선발 투수를 먼저 끌어내리는 팀이 진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만큼 선발 투수의 비중이 크고 연일 대기하는 불펜 투수들에게 부담을 덜 지워야 팀이 산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2008 한국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은 선발 투수들이 ‘무늬만 선발’에 그치고 있다. 특히 불펜진영이 두터운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맞붙은 플레이오프에서는 그 양상이 더해지고 있다. 두산은 선발 김선우가 3회 흔들리며 실점을 계속하자 주저할 것도 없이 김선우를 강판시키고 좌완 구원투수 이혜천을 마운드에 올렸다. 김선우는 최고구속은 시속 150km를 찍는 등 구위는 좋았지만 좁은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하지 못하고 볼넷과 안타를 잇따라 허용했다. 볼넷 3개에 안타 4개를 맞고 4실점. 2실점한 뒤 계속된 무사 만루의 위기에서 긴급하게 불을 끄기 위해 등판한 이혜천은 기대대로 추가실점을 최소화하며 위기를 넘겼다. 최형우에게 밀어내기 몸에 맞는 볼과 채태인에게 희생플라이를 내줘 2점을 더 줬지만 그래도 선방했다. 이혜천은 4회부터 5회 1사까지 깔끔하게 무실점 투구를 펼쳤다. 이어 등판한 우완 정재훈은 2.1이닝 1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 역전승의 발판을 놓았고 우완 이재우가 2이닝을 던지며 경기를 매조지했다. 정재훈 승리 투수에 이재우 세이브 기록. 삼성은 선발 배영수가 3회까지 무실점 투구를 펼치다가 4회 잇단 안타를 맞으며 위기에 빠지자 곧바로 '믿을 맨' 정현욱을 마운드에 올렸으나 불을 제대로 끄지를 못했다. 4회 3실점한데 이어 5회에도 정현욱이 1점을 내줘 동점을 허용,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삼성은 6회부터 권혁-안지만-전병호가 이어던지며 총력전으로 맞섰으나 두산의 맹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4-8로 역전패했다. 삼성 선동렬 감독은 경기 후 “두산 불펜진이 확실히 세다”며 이날 패인의 하나로 추가점을 내지 못한 점을 꼽았다. 한마디로 ‘불펜 싸움’에서 밀렸다는 얘기다. 이처럼 선발보다는 불펜진이 탄탄한 양팀이기에 이번 플레이오프는 내내 ‘불펜 전쟁’이 전개될 전망이다. 그야말로 선발 투수들은 ‘무늬만 선발’일뿐 경기 초반부터 강력한 불펜 투수들이 투입되는 강수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불펜 투수진의 호투와 연투가 가능한 팀이 최종 승자로 탄생할 것이다. 비슷한 스타일로 맞붙은 양팀이므로 투수 교체 타이밍이 승부의 최대 변수이다. 하지만 다음 단계인 한국시리즈를 생각한다면 ‘불펜 싸움’은 출혈이 너무 큰 전술이다. 정상적으로 선발 투수들이 5이닝 이상을 던져주며 제몫을 해주면 불펜 투수들을 그만큼 세이브하며 다음을 기약할 수 있지만 연일 불펜대기가 계속되면 불펜 투수들은 지치게 마련이다. 플레이오프가 한쪽으로 기울어 예상보다 빨리 끝난다고 해도 후유증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불펜 싸움’을 전개한 끝에 승리하고 올라온 삼성이 플레이오프에서 지친 기색을 보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선동렬 감독은 “우리 불펜 투수들이 지친 것 같다. 그렇지만 기분 전환을 해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지만 ‘무쇠팔’도 연일 대기와 등판에는 지칠 수 밖에 없다. 설령 두산이 ‘불펜 싸움’에서 승리해 플레이오프를 통과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해도 걱정이 되는 부분이 ‘불펜진’이다. 삼성과 치열한 불펜 공방전을 벌여 승리한다해도 출혈이 너무 커서 한국시리즈에서는 밀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두산이나 삼성이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승부를 일찌감치 결론내고 한국시리즈에 대비하는 길이 최상이다. 6차전 이상으로 승부가 길어지면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기량을 점검하고 있는 정규시즌 1위 SK에 밀릴 공산이 크다. 지금 당장 ‘불펜 싸움’에서는 승리해서 기쁘지만 앞날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는 양팀 벤치이다. 때문에 양팀 벤치는 선발 투수들이 제발 5이닝 이상을 던지며 제몫을 다해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1차전서 양팀 선발 투수들이 조기강판하고 불펜 투수들이 총력전을 펼칠 때 김성근 SK 감독이 관중석에서 이를 지켜보며 흐뭇하게 미소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sun@osen.co.kr 치열한 '불펜 싸움'을 전개하고 있는 김경문 감독(왼쪽)과 선동렬 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