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잔치에서 선발 투수들의 수난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두산과 삼성이 잠실구장에서 맞붙은 17일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양팀 선발 투수들이 모두 5회도 채우지 못한 채 강판되는 수모를 겪었다. 두산 맷 랜들은 4이닝 동안 1피안타 4볼넷 3탈삼진 1실점한 뒤 5회부터 김상현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총 투구수는 78개였다. 삼성 존 에니스 역시 가 모두 5회를 채우지 못했다. 3회까지 4피안타 무사사구 1탈삼진 3실점한 뒤 4회부터 이상목으로 바뀌었다. 총투구수는 불과 41개. 이런 선발 투수 조기 강판 현상은 가을만 되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올해도 준플레이오프 3경기, 플레이오프 2경기 등 총 5경기 중에서 지난 8일 삼성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삼성 배영수만이 5이닝을 채웠을 뿐이다. 이는 포스트시즌이 갖는 짧은 단기전 승부의 묘미 때문이다. 높은 집중력을 가진 타자들은 컨택 능력을 향상시켜 투수들과 끈질긴 승부를 펼친다. 더불어 페넌트레이스와는 달리 위기 상황에서 한 박자 빠르게 이뤄지는 투수교체 타이밍도 한 원인이다. 특급 선발 투수가 없고 전반적인 선발들의 질적 하락에도 원인이 있다. 하지만 삼성과 두산의 경우에는 팀 사정상 선발진보다 중간 불펜진이 더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SK 김성근 감독은 그 원인을 포스트시즌 들어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심판들에게서 찾았다. 김 감독은 16일과 17일 이틀 동안 잠실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경기를 지켜본 후 선발 투수들이 일찍 강판되는 이유에 대해 "심판들마다 어느 정도 편차가 있긴 하겠지만 정규 시즌 때보다 좁고 엄격한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선발 투수들은 정규 시즌보다 좀더 빡빡해진 스트라이크 존 때문에 타자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평소보다 1~2개 이상의 공을 더 던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볼넷이 많아져 위기를 자초하는 것처럼 보이고 볼넷을 줄이기 위해 정면 승부를 펼치다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이는 곧 교체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양팀 감독도 결과적으로 1차전에서 나란히 부진했던 선발 투수들에 대한 원망을 하지 않았다. 김경문 두산 감독은 경기 후 선발 김선우에 대해 "교체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공이 나쁘지 않았다. 주심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을 뿐"이라며 "많은 공을 던지지 않아 다음 선발 등판 간격이 줄어들었다"고 오히려 신뢰감을 표시했다. 배영수를 바라보는 선동렬 감독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대적인 세기의 차이일 수도 있다. 배영수는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5이닝을 소화했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유일하게 선발이 5회를 넘긴 투구를 펼쳤다. 그러나 배영수는 두산전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그만큼 두산 타자들이 롯데 타자들보다 더 배영수를 잘 공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거꾸로 얘기하면 중간 불펜진이 더 강하기 때문에 선발 투수들이 약간이라도 흔들리거나 위기를 맞으면 부담없이 선발 투수를 내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제 가을잔치에서는 특급 투수가 완벽한 피칭을 하지 않는 이상 가장 먼저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 이상의 역할을 하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letmeout@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