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축구에서는 ‘토털 사커’라는 말이 회자됐다. 그런데 한국 프로야구 특히 올해 플레이오프에서는 ‘토털 마운드’라는 말이 생겨나게 됐다. 플레이오프가 시작될 때부터 김경문 두산 감독이 선언한 것처럼 '보직 파괴'로 선발과 구원 투수의 구분이 없다. 정규시즌에서는 보직에 따라 임무가 나눠져 있던 투수진이 플레이오프에서는 보직 구분없이 등판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5이닝 이상은 책임져줘야 하는 선발 투수는 ‘무늬만 선발’일 뿐 구원투수들이 선발 투수 이상으로 투구를 펼치고 있다. 불펜 투수진이 강하다는 두산과 삼성은 플레이오프서 매 경기 ‘불펜 싸움’을 전개하며 마운드 인해전술을 펼치고 있다. 선발 투수들은 5이닝은 물론 3회에도 조기강판당하는 ‘첫 번째 등판하는 투수’에 그치고 구원투수들이 긴 이닝을 도맡고 있다. 지난 16일 1차전에서는 두산이 4명, 삼성이 5명의 투수진을 동원한데 이어 연장 14회 혈투를 벌인 17일 2차전서는 두산이 9명, 삼성이 8명의 투수를 쏟아부었다. 이틀간 대결에서 가장 긴 이닝을 던진 선발 투수는 2차전 두산 선발이었던 랜들로 4이닝이었다. 반면 양팀 구원 투수진에서는 2차전까지 등판한 4명의 선발 투수들보다 더 많은 투구 이닝을 기록한 투수들이 꽤 있다. 1차전 2이닝 세이브에 이어 2차전 3이닝을 던지며 총 5이닝을 소화한 두산 우완 구원투수 이재우를 비롯해 삼성 우완 중간투수들인 정현욱과 안지만도 총 4이닝씩을 던졌다. 이들 외에도 두산 정재훈이 3.2이닝, 임태훈이 3이닝을 소화하며 플레이오프에 나선 양팀 선발 투수들 못지 않은 투구 이닝을 기록하고 있다. 한마디로 선발 투수라는 보직이 무의미해진 플레이오프이다. 양팀 모두 당장의 승리를 위해 총력전을 펼치다보니 발생된 현상이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플레이오프를 ‘기이한 시리즈’로 부르고 있다. 선발 투수들이 제몫을 해주며 5이닝 이상을 던져줘야 불펜 투수들이 휴식을 가지며 다음 경기를 기약할 수 있는 것이 정상적인 형태이나 이번 플레이오프는 그렇지가 못해서 생긴 말이다. 구원투수가 선발 같고 선발 투수가 구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양팀 선발진에는 특급 투수가 부족한 상황이므로 결국은 불펜 투수들이 총대를 맬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단계인 한국시리즈에서 SK와 맞붙어 선전을 펼치려면 양팀 선발 투수들이 더욱 분발해야 한다. 지금처럼 불펜 투수들이 총동원돼 연일 혈전을 치르게 되면 한국시리즈에서는 지쳐서 맥없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혈투를 벌인 끝에 1승 1패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두산과 삼성은 죽을 맛이지만 둘의 싸움을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는 SK는 흐뭇해하고 있는 ‘기이한 플레이오프’이다. sun@osen.co.kr 2경기서 총 5이닝을 던지며 선발투수보다도 더 많은 이닝을 투구한 두산 특급 불펜투수인 이재우가 1차전서 2이닝을 던지며 8-4 승리를 지키고 세이브를 기록한 후 환호하는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