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를 빼고 예능 프로그램을 논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카메라 장비의 보편화로 여러 대의 카메라가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다양한 각도에서 찍어낼 수 있게 됐고 또 카메라에 담긴 영상들을 동시에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됨에 따라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전성기를 맞게 됐다. ‘카메라의 한계’라는 하드웨어적인 벽을 넘고 나자 상상력은 무한정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리얼리티 형식’이 그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일부 요소이기는 하지만 ‘몰래 카메라’는 초보적인 형태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분명하다. 구석구석 숨겨진 카메라로 피사체를 관찰하며 그 (주로 연예인인) 피사체의 연기가 아닌, 일상의 모습을 찍어내려 했던 게 몰래 카메라다. 현재 인기 있는 MBC TV ‘무한도전’이나 ‘우리 결혼했어요’, KBS 2TV ‘1박 2일’, SBS TV ‘패밀리가 떴다’ 등은 멤버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척 하는 것뿐이지 실제로는 다분히 카메라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본래적인 의미에서는 ‘몰래 카메라’보다 덜 ‘리얼’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끊임없이 ‘진짜 리얼’의 유혹에 빠진다. 프로그램 안에서 몰래 카메라 형식을 도입해 구성원들이나 제 3자를 놀라게 하려 한다. 그 효과는 물론 뛰어나다. 몰래 카메라가 지닌 ‘리얼’의 힘 덕분이다. 문제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몰래 카메라를 도입하는 시점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몰래 카메라를 끌어들이지 않는다. 차별성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동일한 시점, 즉 소재의 한계나 스토리의 벽에 부딪혔을 때 이들은 어김없이 전가의 보도를 꺼내 든다. 최근 ‘1박 2일’은 신입 PD를 상대로 강호동을 비롯한 멤버들이 내부 갈등(난동에 가까운)을 일으키는 모습을 몰래 카메라 형식으로 담아 방송했다. ‘무한도전’은 멤버들을 상대로 스캔들 기사를 확인취재 하는 시나리오로 현직 연예기자까지 동원해 속이려 했다. 19일 방송된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도 몰래 카메라가 등장했다. 결혼한 가상 커플로 출연하고 있는 크라운 제이와 서인영이 다른 부부들 앞에서 크게 말다툼을 하는 설정을 꾸며 놓고 다른 가상 부부들의 반응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마도 제작진은 매우 효과적인 그림을 잡았다고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좋아만 할 수 있을까? ‘1박 2일’도 그렇고 ‘무한도전’도 그렇고 몰래 카메라가 등장한 이후부터는 대체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시들해지고 실제 시청률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몰래 카메라보다 더 자극적인 ‘리얼’은 없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이 쉽게 몰래 카메라의 유혹에 빠지지만 이는 자칫 부작용이 더 큰 극약처방이 될 수 있다. 몰래 카메라 형식을 한번쯤 해 볼 수도 있지만 몰래 카메라는 그 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제작진은 걱정해야 할 듯하다. 100c@osen.co.kr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몰래 카메라를 성공시킨 서인영-크라운제이 커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