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철사마'신명철, 가을에 쓰는 반전드라마
OSEN 기자
발행 2008.10.20 11: 13

[OSEN=대구, 이상학 객원기자] 누구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삼진을 당해도 '병살타만 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 모든 악평을 뒤로하고 그가 가을의 전설이 되려한다. 가을에 쓰는 반전드라마. 삼성 내야수 신명철(30)이 영화 이후 최고의 반전 스토리를 쓰고 있다. 지난 2005년 한국시리즈에서 '걸사마 신드롬'을 일으킨 김재걸처럼 2008년 플레이오프에서는 신명철이 '철사마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팬들은 그의 예기치 못한 반전에 벌써 유혹당했다. ▲절벽의 끝 사실 플레이오프 시작 전까지만 하더라도 신명철은 삼성의 애물단지였다. 삼성 이적 2년째를 맞은 올해 97경기에서 타율 1할8푼4리·1홈런·17타점이라는 극악의 성적으로 롯데 시절의 신명철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반면 지난 2006년 11월 신명철과 트레이드돼 삼성에서 롯데로 옮긴 좌완 투수 강영식이 올해 64경기에서 6승2패2세이브16홀드 방어율 2.88로 맹활약하면서 대조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준플레이오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강영식은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1패1블론세이브 방어율로 10.80으로 무너졌지만 그만큼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증명했다. 반면 신명철은 3차전에서 대타로 나와 삼진을 당한 것이 전부일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다. '신명철에게 이제 기회는 없다'는 말이 나온 것도 그즈음이었다. 하지만 신명철은 극적으로 플레이오프 26명의 엔트리에 합류했다. 진짜로 마지막 기회였다. 박석민의 갈비뼈 부상을 틈타 신명철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9번 타자 2루수로 선발출장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절벽의 끝으로 내몰린 그 때. 그는 달라졌다. 1차전 3회 첫 타석에 선두타자로 나온 신명철은 두산 선발 김선우의 148km 직구를 잡아당겼다. 타구는 유격수 깊숙한 쪽으로 날아갔다. 충분히 내야안타성 타구였지만 신명철은 1루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들어갔다. 유니폼은 흙으로 뒤덮혔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날 그는 4타수 3안타를 쳤다. ▲극의 반전 1차전에서 팀 내 유일의 3안타를 쳤지만 이튿날 열린 2차전에서 신명철은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갈비벼 부상에서 돌아온 삼성의 '걸사마' 김재걸이 컨디션을 회복했기 때문이었다. 신명철은 선발 라인업에서 빠진 것에 대해 "안 서운했다면 거짓말"이라고 털어놓았다. 속으로는 찬스가 오길 기다렸다. 4-4로 팽팽히 맞선 연장 11회 대타로 출장했으나 2루 플라이로 물러난 신명철에게 14회 세 번째 타석에서 마침내 또 기회가 찾아왔다. 2사 후 채태인과 김창희의 연속 안타로 만들어진 1·2루 찬스. 마운드에는 2년차 중고신인 이용찬이 있었다. 초구 149km 바깥쪽 직구를 흘려보낸 신명철은 2구를 잔뜩 노렸다. 이용찬의 146km 직구가 바깥쪽으로 빠져 앉은 포수 최승환의 의도와는 달리 몸쪽으로 들어왔고 신명철의 방망이가 굉음을 내며 세차게 돌아갔다. 타구는 빨랫줄처럼 좌측으로 날아갔다. 대주자 강봉규와 김창희가 모두 홈으로 들어왔다. 2루까지 내달린 신명철은 상대 수비가 느슨해진 틈을 타 3루까지 밟았다. 세레머니에 익숙지 않은 신명철이 3루 삼성 응원석을 향해 오른팔을 한 번 가로젓더니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신명철은 "지금껏 야구하면서 제일 인상에 남는 타점이었다. 그래도 내가 이용찬보다 프로 밥을 더 먹지 않았냐"며 어색하게 웃었다. 5시간7분 승부의 종지부를 찍은 신명철은 2차전 데일리 MVP를 차지했다. 데뷔 후 가장 큰 상이었다. 한 번 태풍을 일으키자 진압되기가 쉽지 않았다. 3차전에서 2번 타자 겸 2루수로 선발 라인업에 복귀한 신명철은 3타수 2안타 1타점 2득점으로 활약했다. 2번 타자로서 찬스의 연결고리 역할을 아주 완벽하게 수행했다. 플레이오프 3경기 성적은 10타수 6안타 타율 6할 3타점 4득점. 볼넷 하나까지 더해 출루율은 무려 6할3푼6리이며 3개나 때려낸 2루타 덕분에 장타율은 놀랍게도 9할에 달한다. 표본이 적지만 3차전까지 양 팀을 통틀어 최고 기록. 특히 선두타자로 나온 5타석에서 4타수 2안타 1볼넷으로 공격첨병 역할을 톡톡히 한 가운데 득점권에서도 결승타 포함 2타수 2안타 3타점으로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MVP 후보 0순위다. ▲궁극의 길 신명철의 가을 활약은 올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한화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도 꽤 인상적인 활약을 했다. 1차전에서 1번 타자로 나와 5타수 무안타로 침묵했지만 2차전에서 3타수 1안타 1득점으로 활약했다. 3차전에서는 9회 류현진에게 솔로홈런을 뽑아내며 5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으로 활약세를 이어갔다. 지난해와 올해를 통틀어 포스트시즌 7경기 성적은 23타수 9안타, 타율 3할9푼1리·1홈런·4타점·6득점. 출루율 4할1푼7리에 장타율은 6할5푼2리나 된다. 이만하면 새로운 가을남자로 손색이 없는 성적표다. 신명철은 "기분이 너무 좋다. 이런 큰 경기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사실 신명철이 가을에 이렇게 활약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도 많지 않았지만 그것을 증명할 길도 없었다. 지난 2001년 롯데 입단 후 6년간 가을잔치 근처에도 가지 못한 선수가 신명철이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대폭발로 어느덧 신명철의 삼성 승리의 보증수표가 된 느낌이다. 두산 입장에서는 의외의 선수에게 카운터펀치를 맞으며 정신을 차리지 못 차리고 있는 것이다. 신명철에게 페넌트레이스 97경기는 포스트시즌을 대비한 일종의 페이크였을지도 모른다. 신명철은 "솔직히 마음을 비웠다. 부담이 없다. 주전으로 나가면 부담이 됐을텐데 백업이라 생각하고 뒷받침만 잘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없어졌다. 백업이라는 생각으로 경기에 내보내주실 때마다 최선을 다하자고 항상 마음먹고 있다"고 말했다. 무심의 타법이 최상의 결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과거 김재걸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신명철은 제2의 김재걸이 될 수도 있다. 김재걸도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들어온 대형신인이었으나 젊은 시절에는 기대에 못 미쳤다. 하지만 이제는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또 하나 더. 묵묵히 내조하는 아내가 곁을 지키고 있다는 공통점이 또 있다. 신명철은 "나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는 집사람이 고맙다. 기도도 해주고 힘이 돼주는 것 같아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신명철은 플레이오프에서 궁극의 길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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