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애틀랜타, 김형태 특파원] 세인트피트(St. Pete). 플로리다 주 피넬라스 카운티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소도시 세인트피터스버그를 현지인들은 이렇게 표현한다. 영어 철자가 똑같은 러시아 상테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h)와 구별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줄여서 부르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세인트피터스버그는 1876년 이곳 땅을 구입한 러시아 출신 피터 디멘스가 자신의 고향 이름을 붙이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 해는 메이저리그 야구가 처음으로 화려한 막을 연 시기였다. 세인트피터스버그는 사실 야구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도시다. 1910년 요양을 위해 피츠버그에서 건너온 알 랭이 시장에 취임하면서 이곳은 야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이어왔다. 따뜻한 햇살과 주변에 널린 비치를 무기로 랭은 메이저리그 팀들을 유혹했다. 이곳에서 스프링캠프를 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각 구단을 설득했다. 그의 노력은 얼마 못가 결실을 맺었다. 1914년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를 시작으로 필라델피아 필리스, 보스턴 브레이브스가 차례로 전훈캠프를 차렸다. 뉴욕 양키스는 25년 새로 개장한 야구장에서 정규시즌을 준비했다. 그 야구장의 이름은 시장의 이름을 딴 알 랭 필드. 올해까지 탬파베이 레이스가 스프링캠프 홈구장으로 사용한 프로그레스 에너지파크의 과거 이름이다. 훈련과 휴식을 병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여러 구단이 앞다퉈 이곳을 찾았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뉴욕 자이언츠, 뉴욕 메츠,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95년까지 차례로 알 랭 필드를 이용했다. 세인트피터스버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인근 클리어워터와 탬파, 더네딘에도 야구팀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2008년 현재 세인트피터스버그와 인근 지역에 스프링 홈구장을 두고 있는 구단은 모두 9개나 된다. 인기 있는 야구팀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하자 도시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강렬한 태양과 손꼽히는 해변을 보유했지만 노인들만 거주하는 활기없는 도시. 세인트피터스버그의 이미지는 고정불변이었다. 타주에서 젊은 인구가 유입되기는 커녕 빠져나가기만 했다. 이런 흐름을 바꾸려면 뭔가 결정적인 전환점이 있어야 했다. 시의회는 오랫 동안 지역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한 야구에 주목했다. 스프링캠프 산업이 번창한 이 지역에 메이저리그 구단을 유치한다면 도시 이미지는 한 번에 바뀔 수 있다. 정렬적이고 근사한 야구팀이 있는 도시, 당당한 메이저리그 프랜차이즈로 우뚝 선다면 도시 선호도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판단했다. 이들은 일단 타 지역 야구팀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유혹의 조건으로 일찌감치 새 구장을 만들었다. 다운타운 근처에 뚜껑이 덮힌 돔구장을 건설해 각 구단 유치 작업에 돌입했다. 그때가 90년이었다. 새 구장 건설과 관련해 분란을 겪고 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타켓이었다. 그러나 이들 구단은 마지막 순간 잔류를 결심했다. 도시의 상징인 야구팀을 떠나보낼 수 없었던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 시가 새 구장 건설을 약속한 결과였다. 세인트피터스버그 주민들은 허탈했지만 참아야 했다. 이들의 기다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메이저리그가 98년부터 29, 30개 구단을 새로 참가시킨다는 결정을 발표하자 이번에는 직접 야구팀을 만들자며 나섰고, 지역 사업가 빈스 네이몰리가 주축이 돼 사업권을 획득했다. 그래서 탄생한 팀이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다. 대도시들의 사교 클럽인 메이저리그의 일원이 됐지만 사정은 딱히 나아지지 않았다. 좀처럼 성적이 나지 않는 구단은 '있으나 마나' 였다. 10년간 꼴지를 9번 한 팀. 가장 좋은 성적이 꼴찌에서 두번째인 팀에 지역민들도 고개를 돌렸다. 경기장은 언제나 텅텅 비었다. 차라리 물놀이를 가고 말지, 매일 지는 야구 경기를 보고싶은 마음이 생길리 없었다. 이런 세인트피터스버그가 요즘은 완전히 바뀌었다. 만년 꼴찌팀 탬파베이가 구단명에서 '데블'을 뗀 뒤 일약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하는 기적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요즘 탬파베이 지역에는 레이스 저지를 입은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트로피카나필드에서 30분 가량 떨어져 있는 탬파 국제 공항에는 레이스의 선전을 축하하는 대형 광고판이 등장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장면들이다. 월드시리즈 결과에 관계 없이 탬파베이는 이미 이룰 것을 다 이뤘다. 창단 첫 아메리칸리그 우승의 성과는 언제 다시 이룰지 모를 위대한 업적이다. 세인트피터스버그는 한국 야구계에도 의미가 남다른 곳이다. 90년대 중반 당시 김인식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OB 베어스가 토니 라루사 감독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이곳에서 시범경기를 치렀다. 훗날 한국과 일본 무대를 평정한 타이론 우즈가 98년 한국 야구계에 첫 모습을 드러낸 곳이기도 하다. 당시 우즈는 알 랭 필드에서 열린 KBO 주최 첫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지명돼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올해까지 95년간 이어져온 세인트피터스버그의 야구사는 이제 한 장을 접게 된다. 지난 11년간 세인트피터스버그에서 시범경기를 한 탬파베이는 내년부터 포트샬롯으로 스프링캠프 홈구장을 옮긴다. 유서 깊은 알 랭 필드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개폐식 구장이 건설되기 때문이다. 한 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이어진 지역 야구사가 정리되는 시기에 탬파베이 레이스는 우뚝 섰다. 새로 바뀐 이름처럼 그들이 내뿜는 '빛(Ray)'은 세인트피터스버그를 넘어 플로리다 전역을 찬란히 빛내고 있다. workhors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