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의 번트였다. 이기고 싶었을 것이다. 하라 다쓰노리 요미우리 감독이 이승엽에게 번트를 지시했던 이유는 한 가지 뿐이었다. 팽팽한 동점승부 마지막 찾아온 기회였다. 이승엽이 번트 성공시켰다면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승엽은 번트에 실패했다. 22일 도쿄돔에서 열린 센트럴리그 클라이맥스시리즈(CS) 2스테이지 1차전에서 이승엽은 평소 보여주지 않았던 번트를 했다. 3-3으로 팽팽한 8회말 선두타자 알렉스 라미레스가 좌전안타로 출루하자 하라 감독은 이승엽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했다. 이승엽은 주니치 좌완투수 다카하시 아키후미의 초구에 방망이를 댔으나 어설펐다. 기껏해야 1년에 한 두번 번트를 하는 타자가 전력투구를 맞히기는 쉽지 않았다. 타구는 그라운드쪽으로 구르지 않고 하늘로 솟았다. 주니치 1루수 우즈가 가볍게 잡았고 순간 번트를 지시한 하라 감독은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번트에 실패한 이승엽은 더욱 어두운 얼굴로 돌아섰다. 이승엽은 앞선 3타석에서 유격수 뜬공, 2루땅볼, 2루땅볼로 물러났다. 하라 감독은 8회말 동점이었고 이승엽이 타격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번트사인을 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타자 다니 요시토모가 홈런을 때렸고, 새로운 황태자로 대접받는 사카모토 하야토도 2안타를 터트린 점도 감안했을 것이다. 상대투수가 좌완이라는 점도 고려했다. 그러나 라미레스였다면 번트사인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시즌 막판 한신과의 우승경쟁 과정에서 하라는 이승엽을 믿었다. 이승엽은 특히 한신전에서 홈런과 승리를 알리는 타점을 많이 올렸다. 하라의 믿음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러나 하라는 CS 무대에서는 이승엽 대신 번트를 믿었다.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낭패감이 깃든 이승엽의 얼굴표정에서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하라 감독은 주니치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해 주니치와의 클라이맥스시리즈에서 어이없이 3연패로 패퇴한 경험이 있다. 2006년에는 도쿄돔 안방에서 주니치의 센트럴리그 우승 장면을 목도했다. 이승엽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비정의 번트사인을 낸 이유였을 것이다. 요미우리는 이승엽의 번트 실패 이후 잡은 1사 만루기회마저 살리지 못했다. 8회 찬스를 날린 요미우리는 결국 9회초 주니치에게 실점, 패배했다. 결정적 순간 상대에게 치명타를 안겨주었던 이승엽의 모습을 기대했던 팬들로서는 아쉬운 순간이었다. sunny@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