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이전 경기의 기록을 통해 복기가 가능한 종목이다. 기록은 복기만이 아닌 다음 전략을 짜기 위한 하나의 좋은 수단이 된다. 그러나 기록에 대한 맹신은 때론 실패작을 만들기도 한다. 김경문 두산 베어스 감독이 지난 29일 SK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서 투수 교체와 대타 작전의 실패로 인해 안방에서의 3연전 중 첫 경기를 놓치고 말았다. 특히 표본이 적더라도 기록에서 우위를 보여 내보낸 선수들이 기회를 날려버린 동시에 위기를 넘기지 못하며 귀중한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첫 번째는 바로 6회초 2사 1루서 선발 이혜천(29)을 대신해 우완 계투 이재우(28)를 투입했다가 최정(21)에게 좌월 결승 투런을 허용한 것이다. 4번 타자 박재홍(35)을 상대할 때까지 이혜천은 올시즌 가장 좋은 구위와 제구력을 선보이며 총 84개(스트라이크 63개, 볼 21개)의 투구수를 기록했다. 시즌 개막을 계투로 시작했던 이혜천이었기에 적은 투구수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많은 공을 던졌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김 감독이 초점을 맞춘 것은 최정의 올시즌 이혜천 상대 전적이었다. 최정은 이혜천을 상대로 6타수 4안타 1홈런 1타점을 뽑아내며 올시즌 타율 3위(3할2푼8리) 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김 감독 또한 경기 후 "최정이 (이)혜천이를 상대로 좋은 성적을 거둬 바꿀 수 밖에 없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혜천을 대신해 마운드에 오른 이재우는 최정을 상대로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으나 표본이 적은 편이라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팀 내에서 가장 구위가 좋았던 선발 투수를 빼는 고육책인 동시에 경기 후반 대도약을 노렸던 김 감독의 전략은 이재우가 던진 초구 높은 직구(145km)를 그대로 당겨친 최정의 방망이로 인해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경기 후 "바뀐 투수의 초구가 결정구가 될 가능성이 컸기에 노리고 있었다"라고 이야기한 최정은 "직구를 노리고 있었는데 때마침 운좋게 직구가 날아들었다"라고 밝혔다. 최정의 결승포는 기록이 아닌 타자의 감과 경험이 만들어낸 타구였다. 2점 차로 리드 당한 상황서 맞은 6회말 득점 찬스가 수포로 돌아간 것이 두 번째 패착이었다. 김 감독은 김동주(32), 홍성흔(31)의 연속 안타와 대타 최준석(25)의 볼넷으로 맞은 2사 만루 상황서 채상병(29)을 대신해 대타 유재웅(29)을 출장시켰다. 당시 마운드에 베테랑 잠수함 조웅천(38)이 올랐기 때문이다. 올시즌 조웅천과 대결을 펼치지 않았던 유재웅의 대타 기록 및 잠수함 상대 타율은 탁월했다. 포스트 시즌 들어 허벅지 부상과 감기 몸살로 주전 우익수 자리를 전상렬(36)에게 내줬던 유재웅은 대타로 4할7푼8리(23타수 11안타) 1홈런 5타점을 기록했으며 잠수함 투수를 상대로도 3할8푼5리(26타수 10안타)의 고감도 타격을 자랑했다. 안방에서 펼쳐진 경기 분위기 상으로도 주도권은 조웅천보다 유재웅에게 더욱 가까이 있었다. 그러나 유재웅은 조웅천이 던진 초구 체인지업(114km)을 그대로 흘려 보낸 뒤 결국 6구 째만에 삼진으로 물러났다. 조웅천의 체인지업이 가운데로 몰린 실투성 변화구였음을 떠올렸을 때 초구 실투를 노리고 들어간 최정의 홈런 장면과 대비되며 두산 팬들에게 아쉬움을 자아냈다. 유재웅은 초구 공략에서도 3할4푼4리(32타수 11안타)로 고타율을 자랑했던 타자였으나 단기전에서는 정규 시즌과 같은 타격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김 감독이 철저히 기록에만 집중하는 사령탑은 아니다. 김 감독은 그간의 개인 기록을 기본 바탕으로 선수들의 훈련을 유심히 눈여겨본 후에야 신중하게 라인업을 짜고 교체 요원을 발탁하는 감독이다. 상대 기록이 출중한 선수를 일단 우선 순위에 넣은 뒤 몸상태와 자세를 감안해 기용법을 펼치는 지휘자이기도 하다. 29일 경기는 정규시즌 기록과 반대된 결과를 낳으며 김 감독에게 2008 한국시리즈 2패째를 안겼다. '교체 실패'로 인해 1승 후 2연패를 당한 두산이 30일 경기서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수 있을 지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farinelli@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