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2003년 기억'이 기다려 준 '애증의 이승호'
OSEN 기자
발행 2008.10.31 11: 02

'2003년이 없었다면 이승호는 지금 없을지 모른다'. SK팬들에게 지난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은 1승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원조 에이스' 이승호(27)가 부활, 내년 시즌 전망을 더욱 밝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승호는 이날 팀이 3-1로 리드한 7회 무사 1, 3루 상황에 긴급 투입됐다. 추격의 여지는 물론 역전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이승호는 첫 타자 오재원과 다음타자 채상병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어 대타로 나온 거포 최준석을 볼넷으로 내보내 만루위기를 자초했지만 대타 이대수를 3루 땅볼로 유도해내며 실점없이 이닝을 마쳤다. SK 와이번스 구단 책임자 신영철 사장은 누구보다 빅 팬의 심정으로 이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신 사장은 '스포테인먼트'라는 개념을 통해 프로야구판에 새로운 마케팅 바람을 몰고 온 리더였다. 그러나 동시에 3루 땅볼로 실점없이 7회말 수비가 끝나자 주위 사람과의 하이파이브에 열중한 'SK 광팬'이기도 했다. 신 사장은 "저렇게 마운드에 서 있는 이승호를 보고 있으니 2003년 기억이 떠오른다"고 밝혔다. 이승호는 SK가 창단 후 맞은 첫 가을잔치였던 2003년 포스트시즌에 6차례나 나왔다.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를 비롯해 KIA와의 플레이오프, 현대와의 한국시리즈까지 모두 출장했다. 당시 SK 텔레콤 홍보실장으로서 포스트시즌 경기를 지켜봤던 신 사장에게는 이승호가 대단해 보였다. 야구는 잘 몰랐지만 150km대의 직구와 고속 슬라이더, 역동적인 투구모션을 지닌 원조 에이스에 대한 깊은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 2000년 군산상고를 졸업 후 SK 창단과 함께 입단한 이승호는 그 해 10승 12패 9세이브 방어율 4.51로 신인왕에 올랐다. 다음해 14승(14패) 165탈삼진(2위) 3.55의 방어율(2위)을 기록한 이승호는 2002년과 2003년 6승, 5승으로 주춤했지만 2004년 15승(9패), 145탈삼진(3위)으로 부활했다. 그러나 계속된 혹사에 어깨 통증이 심해졌고 2005년 9월 정규시즌 3경기, 10월 한화와의 준플레이오프 3경기 후 조용히 사라졌다. 그런데 막상 신 사장이 2005년 야구단에 부임하고 보니 이승호가 보이지 않았다. 2005년 후반에 잠시 나오긴 했지만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을 정도였다. 이에 신 사장은 "그렇게 잘 던졌던 투수가 막상 와보니 보이질 않았다. 매년 연말이 되면 정리 대상 후보 중 한 명으로 이승호의 이름이 언급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신 사장은 "그럴 때마다 SK그룹 전체를 하나로 뭉치게 만든 2003년이 떠올랐고 2005년부터 3년 동안 내내 이승호의 재활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볼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며 "지금 이렇게 경기장에서 뛰는 모습을 보니 그 때 내가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잘했다 싶다. 개인적으로 반갑고 감회도 새롭다"고 강조했다. "엄정욱과 함께 매년 애정을 가지고 봐왔지만 솔직히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하며 투정 아닌 투정도 많이 부렸다"는 신 사장은 "입장을 바꿔 놓고 보면 보이지 않았지만 묵묵하게 참으며 재활한 그 노력 또한 대단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서는 재활을 도운 사람들에 대해서도 고마워해야 한다"고 인고의 재활 기간을 보낸 이승호와 재활 스태프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신 사장은 이승호를 통해 또 한 번 스포츠의 의미를 되새겼다. "스포츠는 좌절하고 있을 때 꿋꿋이 재기할 수 있다는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이승호 같은 선수가 있어 뿌듯하다"는 신 사장은 "내가 스포츠 현장에 이렇게 나와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행복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신 사장의 '2003년 기억' 속에 이승호가 없었다면 2008 한국시리즈 판도는 또 어떻게 흘러갔을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letmeou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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