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불참, 존중해야 할 박찬호의 선택
OSEN 기자
발행 2008.11.01 07: 01

[OSEN=애틀랜타, 김형태 특파원] 박찬호(35)는 내년 3월 열리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불참할 수도 있다는 뜻을 강하게 나타냈다. "메이저리그에서 선발투수로 활약하려면 스프링캠프를 소흘히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귀국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박찬호의 의사는 충분히 존중해야 한다. 국가 대항전을 표방하는 WBC의 비중을 절대 과소평가할 수 없지만 선수 개인의 선택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개인보다 국가가 중요하다는, 70∼80년대식 국가주의 사고가 점점 수그러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박찬호 입장에선 내년 봄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월드시리즈 종료 하루 뒤인 전날부터 메이저리그는 FA 등록을 받기 시작했다. 여러 거물들이 일찌감치 FA 등록을 마쳤다. 등록 첫날 매니 라미레스, 데릭 로, 그렉 매덕스 등 박찬호와 함께 땀을 흘린 다저스 동료들이 줄줄이 FA를 신청했다. 박찬호도 조만간 FA 신청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잘 알려졌다시피 올해 FA 시장에는 거물급 투수들이 쏟아져 나온다. C.C 사바티아, A.J 버넷, 라이언 뎀스터 같은 A급 투수는 물론이고 마이크 무시나, 랜디 존슨 같은 베테랑 투수도 상당수 눈에 띈다. 박찬호와 비슷한 급인 바톨로 콜론, 존 갈랜드, 리반 에르난데스, 랜디 울프도 새 구단을 알아보고 있다.
풀타임 선발투수를 희망하는 박찬호가 이들 틈에서 원하는 구단과 원하는 조건에 계약하기란 쉽지 않다. 본인 말대로 "올해 선발로 5경기 밖에 등판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발 투수' 박찬호를 희망하는 구단이 얼마나 나올 지는 알 수 없다. 선발 투수로 계약이 되더라도 1년 단기 계약이 유력한 이유다.
박찬호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차가운 편이다. 다저스와는 결별이 확정적이다. LA타임스는 후반기 부진을 들어 "올 시즌 박찬의 성적은 C에 불과하다"고 했고, 다른 매체는 "박찬호가 강팀에서 풀타임 선발로 뛸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캔자스시티나 볼티모어 등이 유력한 후보"라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박찬호가 LA를 떠나는 것이 아쉬운 쪽에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잡고 싶겠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서부 이전 50주년을 맞은 올해 다저스가 LA에서의 반세기를 기념하는 행사에 박찬호를 제외하면서 양측의 결별은 예상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항상 태극마크에 대한 동경을 나타낸 박찬호이지만 지금은 자기 코가 석자인 상황이다. 다른 구단과 1년 단기 계약을 맺는다고 가정할 경우 내년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판이다. WBC에 집중하다 자칫 팀내 입지가 위축될 경우 그 손실을 메워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박찬호는 그동안 할 만큼 했다. 군면제 혜택이 걸려 있었다지만 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6년 초대 WBC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지난해에는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도 참가해 후배들을 독려했다. 어느덧 30대 중반을 넘긴 그도 이제는 자신의 본업에 좀 더 집중할 때가 됐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노파심 때문이다. 지난해 올림픽 예선전 참가를 독려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일부 야구계 관계자들은 선수들의 참가를 권유하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고 한다. 한창 시즌 중인 선수들을 찾아가 "국가의 부름을 외면해서야 되겠느냐. 그동안 혜택을 받았으면 당연히 보답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다그쳤다고 한다. 살얼음판 같은 팀내 경쟁에 온 신경을 쏟고 있던 선수들이 받았을 부담이 어떠했을지는 짐작 가능하다.
박찬호와 같은 거물이 그런 일을 당할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국가보다 자신의 앞날이 소중하다는 것 아니냐'는 뒷말은 없어야 한다. 한국 야구도 이제는 시민 사회 수준에 걸맞게 한 단계 성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개인의 선택은 언제든지 존중되어야 한다. 비단 박찬호에게 국한된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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