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20세에 불과한 유망주에게 '신'은 너무도 가혹했다. 2008시즌이 낳은 최고의 히트 상품 중 한 명인 김현수(20. 두산 베어스)가 한국시리즈로 인해 그답지 않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2번 타자로 시즌을 시작해 3번 타자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던 김현수는 SK 와이번스와 치른 한국시리즈 5경기서 21타수 1안타(4푼8리) 1타점에 그치며 결국 팀의 2년 연속 준우승을 지켜봐야 했다. 삼진 6개를 기록했던 1,2차전과는 달리 3차전부터는 밀어치는 배팅까지 보여주며 슬럼프 탈출을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승리의 여신'은 김현수를 외면했다.
특히 0-2로 뒤지고 있던 5차전 1사 만루서 김현수가 때려낸 채병룡(26)의 초구는 힘없이 투수의 글러브를 향했다. 3차전 경기를 끝낸 2루수 앞 병살타에 이어 눈앞에 펼쳐진 지독한 불운이었다. 아웃이 자명한 순간에도 열심히 1루로 향했으나 SK 선수단의 함성에 그는 힘없이 고개를 숙여야했다.
시리즈 전적 1승 4패로 정상 문턱에서 세번째 고배를 마신 김경문 감독은 "그래도 우리 팀에서 가장 믿을만한 타자 중 한 명이 (김)현수였다"라며 소년을 감싼 뒤 "김현수는 두산만이 아니라 장차 한국 야구를 이끌만한 좌타 유망주다. 큰 경기서 방심하면 안된다는, 굉장히 값진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며 애정을 보여주었다.
부담과 후회 속에 생애 두 번째 포스트 시즌을 마친 김현수는 바뀐 스트라이크 존에 당황하며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 묻자 그는 "다 좁아졌다. 상하좌우 모든 쪽에서 좁아져 버리니까 어떤 공을 쳐야할 지 주저하게 되고 생각도 많아지더라"라며 어려움을 표시한 바 있었다.
시즌 도중 그는 "일단 머리 속에 스트라이크 존을 그려넣고 '이거다' 싶으면 때려내는 편이다. 무엇을 노리고 친다기보다 그저 치기 좋아보이는 공이 오면 배트를 휘두른 것이 운 좋게 안타가 되었다"라며 겸손하게 자기 타격을 이야기한 바 있다. '가을 야구'까지 끝난 현재 김현수가 밝힌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김현수는 누구나 가지기 힘든 파워 포텐셜을 지닌 선수다. 경기 전 타격 훈련서 보여주는 그의 타구는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라인드라이브 성으로 쭉쭉 뻗어나가며 외야 관중석 의자로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기서는 쉽게 확인할 수 없던 그의 배팅 파워를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올시즌 장타보다 정확성을 위주로 한 배팅을 펼친 김현수는 볼끝에 집중해 방망이 중심에 맞춰 몸의 중심까지 함께 이동하는 다른 유망주와 달랐다. 어떤 타격이라도 하체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는 타격을 보여준 김현수는 타고난 힘이 좋았기에 방망이 끝에 걸려도 안타가 되었고 중심에 잘 맞은 경우에는 호쾌한 장타가 되었다. 이는 그가 보여준 '존 타격'의 커다란 장점이었다.
그러나 김현수는 '작은 차이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듯' 포스트시즌 들어 변화된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대처법에서 아쉬움을 보여줬다. 단순하게 눈과 몸이 반응하는 대로 방망이를 휘두르던 김현수는 바뀐 환경에 의해 생각이 많아진 '사춘기 소년'처럼 방황했고 이는 결국 한국시리즈 슬럼프로 이어졌다.
올시즌 도중 김 감독은 김현수의 미래에 대해 "다음 시즌에는 그렇게 정확한 타격을 선보이지는 못할 것이다. 장차 거포로 키울 생각이기에 홈런 갯수는 늘어나도 타율은 떨어질 것이다. 2할대 후반만 되도 (김)현수는 선전한 것이다"라며 언젠가 김현수가 '벽'에 부딪히게 될 것임을 암시했다. 만 20세에 불과한 김현수에게 2008년 한국시리즈는 조금 더 빨리 찾아온 '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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