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지휘봉 '폭탄 돌리기'와 김인식의 부담
OSEN 기자
발행 2008.11.06 08: 15

이상한 그림이다. 한국야구위원회 기술위원회는 지난 5일 오후 긴급회의를 갖고 WBC 사령탑 후보를 논의한 끝에 1회 대회 4강을 이끌었던 김인식 한화 감독을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공은 김인식 감독에게로 넘어갔고 두 대회를 연속으로 떠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감독 선임 과정에서 실망감을 표시하고 있다. 김인식 감독까지 공이 튄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유력 감독 후보들이 고사했기 때문이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신화를 달성한 김경문 감독은 지난 2년 동안 대표팀을 위해 봉사한 만큼 고사 의사를 밝혀왔다. 그래서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룬 김성근 SK 감독이 유력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김성근 감독은 갑자기 건강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했다.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지휘봉을 잡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뚜렷한 이유를 들어 고사하자 모양새가 이상해진 것이다. 대표팀 사령탑이 갖는 부담은 이해가 된다. 성적을 거두어야 된다는 중압감이 크다. WBC는 올림픽과 다르다. 이번 대회 아시아 예선에에서 왕첸밍(뉴욕양키스)이 버티는 대만에게 당할 수도 있다. 예선리그에서 덜미를 잡힌다면 이력에 흠집이 생긴다. 2월 중순 팀을 떠나며 생기는 공백도 발목을 잡는다. 김경문 감독은 스프링캠프를 일찌감치 비운 점에 대해 팀 전력에 크나큰 마이너스 요인이라고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 베이징올림픽 대만 예선대회에서 코치를 했던 선동렬 삼성 감독도 부담 때문에 태극마크를 반납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찌보면 대표팀 지휘봉은 모든 감독들이 가진 또 하나의 꿈이다. 독이 든 성배이지만 마시고 싶어할 수도 있다. 특히 유력 후보 김성근 감독은 자신에게 돌아온 지휘봉을 잡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꿈일 수도 있는 자리였다. 건강문제가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KBO는 김성근 감독이 고사하자 발빠르게 움직여 김인식 감독을 추대했다. 삼고초려 보다는 대안을 선택했다. 김인식 감독은 부임 요청 전화를 받고 "갑자기 왜 이렇게 됐는가"라며 의아함을 표시했다. 김 감독은 2006 1회 WBC 대회 이후 사실상 대표 감독 은퇴를 선언했지만 3년 만에 지휘봉을 다시 잡게 생겼다. 김인식 감독은 누구보다도 큰 부담을 안고 있다. 내년 한화와의 계약이 끝나는데다 팀 전력은 자신이 부임한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다. 결코 김성근 감독이나 김경문 감독보다 여유있는 처지가 아니다. 건강 문제 역시 완벽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무엇보다 폭탄돌리기 끝에 맡는 모양새가 격에 맞지 않는다. 이 때문에 KBO의 행보도 아쉽다.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면서 화두는 WBC 사령탑 문제였다. KBO는 김경문 감독이 난색을 표하자 감독 선임 문제를 포스트시즌 이후로 미루었다. 일찌감치 감독 선임 문제를 놓고 논의를 거쳐 원칙을 정했다면 오히려 순조롭게 풀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뚜렷한 이유없이 선임 문제를 미루는 통에 여러가지 뒷말이 나왔다. 서로 지휘봉을 떠넘기는 듯한 발언들이 이어졌다. 결국 '국민감독' 김인식 감독이 느닷없이 폭탄을 떠안은 상황이 되고 말았다.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조차 모호하다. su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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