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시즌 뒷심 부족으로 내려앉던 그들이 아니었다. 80년대 이후 퍼시픽리그의 강호로 자리매김하다가 잠시 숨을 고르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가 다시 포효했다. 세이부는 지난 9일 도쿄 돔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일본 시리즈 7차전서 선발 요원을 총출동시키는 끝에 3-2 역전승을 거두며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2008시즌 일본 최고의 팀으로 등극했다. 2004시즌 이후 4년 만에 일본 시리즈 패권을 거머쥔 세이부의 도약은 대한해협 건너 한국에도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1982년 이후 25년 연속 리그 A클래스(1~3위) 자리를 지키며 '상승(常勝)팀'의 면모를 과시했으나 지난해 66승 2무 76패로 리그 5위에 그쳤던 세이부는 시즌 종료 후 곧바로 팀 재건에 나서는 기민함을 보여줬다. 팀의 심장과도 같던 이토 쓰토무(46) 감독을 해임한 뒤 8,90년대 강속구 투수로 명성을 날린 와타나베 히사노부(43)를 감독직에 앉힌 것은 그 첫 단계였다. 마쓰자카 다이스케(28. 보스턴)-니시구치 후미야(36)에서 와쿠이 히데아키(22)-기시 다카유키(24)로 선발 주축이 젊게 변한 것을 감지한 와타나베 감독은 야쿠르트 시절 동료이기도 했던 이시이 가즈히사(35)가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취득하자 곧바로 영입 희망의사를 밝혔다. 니시구치와 함께 선발진을 지탱할 베테랑이 필요했던 것이다. 세이부는 이시이를 영입하는 대신 보상 선수로 팀 내 가장 빠른 주자 중 한 명이던 후쿠지 가즈키(33. 야쿠르트)를 내주는 출혈을 감수했다. 그러나 와타나베 감독은 "이시이의 직구에는 아직 힘이 실려있다"라며 믿음을 보였다. '졸린 눈의 포커 페이스'로 타자들을 현혹시켰던 이시이는 140km대 후반의 묵직한 직구를 앞세워 135⅓이닝 동안 11승 10패 평균 자책점 4.32에 탈삼진 108개를 기록, 구위에 큰 문제가 없음을 과시했다. 또한 와타나베 감독은 니혼햄과의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앞두고 오쿠보 히로모토(41) 타격코치와 외국인 타자 히람 보카치카(32) 가 난투극 일보직전까지 간 데 대해 "벌금이나 출전 정지 징계 등은 필요없다. 격한 토론으로 일어난 싸움은 어디서나 있게 마련"이라고 이야기한 뒤 개인 면담을 마련, 양자 간의 화해를 이끌었다. 메이저리그 시절 '수비만 화려하다'라는 반쪽 평가를 받았던 보카치카는 7차전 역전승의 발판이 된 만회 솔로포를 때려내며 감독의 기대에 보답했다. 세이부 구단 또한 팀의 약점을 잘 알고 보상선수를 뽑아오는 치밀함을 보였다. 세이부는 지난해 주포 와다 가즈히로(36. 주니치)를 FA로 떠나보내는 대신 우완 오카모토 신야(34)를 보상선수로 영입했다. 지난 시즌 세이부는 마무리였던 오노데라 치카라(28)가 4승 5패 13세이브 평균 자책점 5.13으로 대형 방화를 저지르는 등 뒷문 불안으로 인해 고전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보호선수 명단서 제외된 오카모토를 영입한 것이다. 주니치에서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34)와 함께 '승리 카드'로 활약했던 오카모토는 올시즌 47경기에 등판, 2패 18홀드 평균 자책점 3.83을 기록했다. 완벽한 모습은 아니었으나 오카모토는 좌완 호시노 도모키(31)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계투진을 안정시켰다. 지난 시즌 중반부터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던 3년차 외국인 투수 알렉스 글래먼(31)은 앞선 투수들의 활약을 등에 업고 3승 3패 31세이브 평균 자책점 1.42로 날아오르며 뒤늦게 '재팬 드림'을 그려내고 있다. 경력과 구위를 충분히 갖춘 베테랑 릴리프 오카모토를 영입한 후 세이부는 '연쇄효과'를 통해 탄탄한 계투진을 구축했다. 여기에 세이부는 와타나베 감독 취임에 맞춰 홈구장인 도코로자와 돔을 개조하는 동시에 관중석 한 켠에 '키즈 스페이스'를 만들었다. 세이부 구단 측은 "과거 와타나베 감독의 여성팬들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편안히 경기를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선수 만이 아닌 스타 출신 감독을 앞세운 마케팅과 '야구장의 테마파크화'를 동시에 노린 구단의 전략을 알 수 있었다. 주어진 기회를 잘 살려낸 젊은 야수진의 활약도 눈에 띄었다. 발빠른 2루수 가타오카 야쓰시(25)는 올시즌 2할8푼7리 4홈런 50타점에 50도루(1위)를 기록하며 마쓰이 가즈오(32. 휴스턴)의 7번을 이어받은 역량을 마음껏 과시했다. 공격형 유격수 나카지마 히로유키(26)는 3할3푼1리(2위) 21홈런 81타점 25도루(4위)로 전 부문에서 맹위를 떨쳤다. 4~5년 전 스타들의 이적과 노쇠화 등으로 갑작스럽게 주전 자리를 차지했던 이들은 강한 승부근성을 보여주며 세이부를 젊은 팀으로 이끌었다. 시즌 막판 당한 부상으로 인해 일본 시리즈에 힘을 보태지 못했으나 3할2리 21홈런 62타점을 기록하며 와다의 이적 공백을 메운 외야수 G.G 사토(31) 또한 빛을 발했다. 올 시즌 도중 "차가 고물이다. 더욱 열심히 해서 연봉을 많이 받아 새 차를 구입해야 한다"라며 팬들의 배꼽을 잡게 했던 사토는 '즐기는 야구'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며 새로운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를 굳혔다.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서의 실책으로 국내 야구팬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토지만 그가 포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선수임은 감안해야 한다. 리그 홈런왕(46홈런) 타이틀을 차지한 나카무라 다케야(25)는 노련한 스윙을 선보이지 못하며 타율 2할4푼4리 삼진 162개(1위)의 '선풍기'가 되기도 했으나 일본 시리즈서 3개의 홈런을 작렬하며 타선에 파괴력을 더했다. 베테랑이 부족한 라인업이었으나 저마다 '해결사 본능'을 갖춘 무시할 수 없는 타선이었다. 구단과 사령탑, 선수들의 행동력이 하나가 된 팀만큼 무서운 상대는 없다. '세대 교체'에 성공하는 동시에 '일본 최강팀'으로 재도약한 세이부의 향후 움직임이 '찻잔 속 태풍'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다. farinelli@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