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흔히 각본없는 드라마라고 부른다. 사이버 스포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이버 태극전사들이 보여준 WCG2008 그랜드파이널은 한 편의 각본없는 드라마였다. 지난 6일(한국 시간)부터 독일 쾰른서 나흘간 펼쳐졌던 WCG 2008 그랜드파이널은 전 세계 1억 명의 e스포츠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역대 최고의 성적으로 WCG 통산 네 번째 우승을 일궈낸 사이버 태극전사들은 한국, 아니 전세계 e스포츠 팬들에게 최고의 감동과 환희의 순간을 선사했다. 2001년 대회 시작 이후 8연패에 성공한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해 비인기 종목이었던 캐롬3D, 붉은보석서 금메달을 거머쥐며 한국e스포츠의 저력을 세계에 분명하게 보여줬다. 마지막 순간 분루를 삼켜야했던 워크래프트3, 카운터스트라이크,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등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를 연출, 최정상급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국은 그 동안 논란에 휩싸였던 전통적인 강세 종목 스타크래프트 이외에 다른 종목서 결실을 맺으면서 금메달 3, 은메달 3, 동메달 1를 획득, 역대 최고 성적으로 정상 탈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선수들 역시 혼연일체로 서로 컨디션 조절은 물론이고, 함께 경기장서 동료들의 경기를 마음 졸이며 응원하고 힘을 보태 세계 최강으로 거듭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했다.
이번 WCG2008은 슬로건인 'Be yond the Game(게임, 그 이상)'처럼 한 편의 영화가 따로 없었다. 유럽권에서 인기가 없다고 평가받는 스타크래프트는 180도 다른 모습을 연출했다. 특히 이제동과 송병구가 맞붙었던 8강전은 메인스테이지 1800석을 불과 5분 만에 채우는 장관을 연출할 정도였다.
팬들의 e스포츠 관람 문화도 수준급이었다. 세계 각지서 모인 팬들은 선수들의 동작 하나 하나에 열광했고, 환호하며 스스럼없이 사인을 요청했다. 심지어는 팬사이트 모임을 개최해 선수들을 초대하며 선수들과의 거리감을 없애려고 했다.
애틋한 동료애도 빼 놓을 수 없는 얘기 중의 하나다. 워크래프트3 장두섭의 경우 대회 둘째날 조별 예선서 탈락한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경기장서 한국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했다. 단순한 응원이 아닌 끝까지 옆에서 환호하고 격려해주며 활력소 구실을 자처했다.
장두섭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곧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강병건의 아쉬운 은메달 소식의 경우 다들 자기 일들처럼 '너무 아쉽다'며 안타까워했다. 특히 같은 방 동료였던 캐롬3D 금메달리스트 구명진 씨는 "내 우승보다 더욱 우승을 바랐던 동료였다"고 자신의 우승 인터뷰 때 거듭 강병건의 이름을 언급했다.
아쉽게 정상을 눈 앞에 놓치며 다음을 기약하는 선수들의 모습도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의 중 하나였다. 눈 앞에 왔던 금메달 놓친 '월드스타' 장재호(23, MYM)는 담담하게 인터뷰에 응했지만 아쉬운 마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고, SK게이밍과 3시간이 넘는 접전 끝에 1-2로 분패한 이스트로는 차기 대회 때는 반드시 정상에 올라가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박찬수에게 패한 송병구도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 한 번도 기회가 온다면 그 때는 최선을 다해 다시 한 번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보다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메달 색깔을 가리지 않고 혼을 보여준 사이버 태극전사들 모두가 MVP였기에 의미가 배가 된 한국의 종합 우승이었다.
/쾰른(독일), OSEN 고용준 기자 scrapp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