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공을 던지는 왼손 투수는 흔치 않다. 여기에 제구력과 결정구까지 갖추고 있는 투수라면 그 가치는 어마어마하게 올라간다.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일본 무대 진출을 노리는 좌완 이혜천(29. 두산 베어스)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올시즌 7승 5패 평균 자책점 4.69를 기록한 이혜천은 포스트 시즌서 쾌투를 선보이며 진면모를 과시했다. 이혜천은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4경기서 12이닝 동안 1패 평균 자책점 3.00을 기록한 뒤 지난 10월 29일 잠실서 벌어진 SK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서는 5⅔이닝 동안 4피안타(탈삼진 7개, 사사구 1개) 2실점으로 호투했다. 승리와는 인연이 없었으나 그가 선발 투수로 보여줬던 가능성은 대단했다. 시간이 갈수록 한층 안정된 제구력을 선보였다는 점은 그에게 가장 고무적인 일이다. 과거 공만 빠르던 이혜천은 그의 특이한 팔 높이와 어우러져 좌타자에게 엄청난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이는 볼끝이 탁월했다는 데에도 이유가 있었으나 타자들에게 '몸에 맞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체감 효과는 엄청나게 컸으나 결과는 주자를 누상에 쌓아가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서는 달랐다. 3차전서 이혜천의 투구를 지켜 본 SK 전력분석팀은 "여태까지 봤던 이혜천의 공 중 가장 뛰어났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11시즌 동안 베어스에 공헌한 왼손 투수의 눈은 일본 무대를 향하고 있다. 두산의 한 구단 관계자는 "이혜천은 사나이다운 도전 정신을 지닌 선수다"라며 그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탁월한 구위와 움직임이 좋은 변화구, 여기에 모험을 즐기는 남자 이혜천의 일본 진출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일본에서도 이혜천과 비슷한 좌완 스리쿼터 투수는 많은 편이 아니다. 올시즌 11승 6패 평균 자책점 2.63을 기록하며 세이부 라이온스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던 호아시 가즈유키(29)의 투구폼이 이혜천과 흡사하지만 볼배합 스타일 등은 다르다. 호아시는 140km대 초,중반의 직구와 느린 팜볼 조합을 선보이는 반면 이혜천의 공은 대체적으로 빠른 편이다. 호아시와 같은 완급 조절용 팜볼은 없지만 이혜천 또한 결정구를 갖추고 있다. 이혜천의 체인지업은 최고 139km의 구속을 자랑하며 날카롭게 시계 방향으로 떨어진다. 이혜천 본인은 '투심'이라고 밝혔으나 이는 특이한 투구폼과 어우러져 정통파 투수의 투심보다 떨어지는 폭이 큰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에서도 130km대 후반에 달하는 체인지업을 던지는 투수는 거의 없다. 희귀성을 갖춘 좌완 이혜천이 다음 시즌 일본서 자신의 구위를 선보일 수 있을 지 야구 팬들의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farinelli@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