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한편으로 가족과의 대화를 이끌어 내는 작품이 있다. 가족애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현대인들이 감동과 함께 숙연해 지는 시간이다. 연극 ‘잘자요, 엄마’, 1만 5000명의 모녀관객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게 하고 가족 간의 소통을 호소했다. “그냥 산다는 게 재미가 있지 않아. 앞으로 더 나빠질까봐 걱정하는 것도 싫고….” 일상이 지루한 딸 ‘제시’. 평소와 같은 일상에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엄마, 나 자살할거야”라고 이야기한다. 한가로운 저녁시간을 보내던 엄마 ‘델마’는 그 말을 무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제시의 결심이 농담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평생을 가족이기에 소통하기 힘들었고 일상이기에 잊고 있었던 그 무엇을 오늘밤 깨달아 간다. 그녀들의 일상에 파고든 ‘죽음’ 앞에서 늦은 소통은 서로 이해하기를 바란다. 서로 간의 이해는 억지스럽기까지 하고 이런 상황은 오래도록 풀지 못할 숙제로 남거나 더 깊은 슬픔만을 남겨 더욱 안타깝다. 아주 모진 딸로 비칠 수 있는 황정민(딸, 제시 역)은 평생 간질병과 이혼, 아들의 가출과 범죄로 고달픈 인생을 살아왔다. 간질병이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녀다. 지긋지긋한 삶을 끝내는 것만은 자신이 선택하고 싶다고 말하는 제시, 그녀가 유일하게 선택한 것은 ‘자살’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아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살아주었으면 간절히 바라는 관객들은 죽음 앞에 덤덤한 황정민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먹먹한 말투, 태연한 그 표정은 황정민이였기에 더 리얼했다. 상처를 참아내는 아슬아슬한 표정은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함께 느끼려는 관객을 끌어 들이고 눈물 흘리게 하는 원동력이다. “잘자요, 엄마” 일상에서의 저녁인사를 하며 뒤돌아서고 잠시 후 한발의 총성이 울린다. “네가 그토록 외로운 줄이야. 아가, 내 아가, 나를 용서해라. 난 네가 내 것인 줄 알았다.” 나문희(엄마, 델마 역)는 침착하게 슬픔을 극복하는 감동으로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사랑스럽고 소녀 같은 나문희의 천진난만한 연기는 편안함과 동시에 오열하지 않는 더 큰 슬픔을 선사했다. ‘연극열전 2’ 여덟 번째 작품 ‘잘자요, 엄마’, 지난 8월 29일 공연 이래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으로 2개월 연장 공연을 밝히고 한창 무대에 열기를 더하고 있다. 어렵다는 소극장 연극에서 1만 5000여 모녀관객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힘은 기본에 충실했던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한 몫 했다. “배우가 무대와 소통하고, 희곡과 소통하며,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 연극의 가장 기본이다”고 말한 연극평론가의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이 머리에 감돈다. ‘잘자요, 엄마’의 배우 황정민과 나문희는 기꺼이 자신들의 이름을 버리고 제시와 델마로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죽음 앞에서 가족의 소통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이야기하는 그녀들의 소통은 일상의 가족을 잊고 살았던 관객들을 반성하게 했다. jin@osen.co.kr 연극 ‘잘자요, 엄마’ 공연 장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