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돼먹은 현실을 비판하고 비꼬기 위한 연극은 아니다. ‘착하게 살면 이렇게 된다?’ 는 씁쓸함으로 현실에 우울함만 남기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도덕적인 성숙함을 요구하고 정작 현실을 만들어 내는 우리들에게 바보 같은 박성호를 통해 은하수를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여기저기 깔린 웃음코드는 배우 정은표와 이동규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연극의 감동 포인트가 더욱 살아나게 만들었다.
2차 대전 중 실종됐던 한 독일병사의 현실 속 혼돈과 상실감을 다룬, 칼 비트링거의 ‘은하수를 아시나요’가 수수한 우리 옷을 입어 한국 실정에 맞게 각색됐다. 연극 ‘밀키웨이’는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실종됐던 박성호가 이기심으로 가득 찬 현실에서 배반당하는 단계별 사건을 통해 ‘희비극적 서사극’으로 무대에 올렸다.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지만 통계학적으로 죽은 박성호’
정신병원에 우유를 배달하는 이동규(박성호 역)는 출입문이 무섭다며 창문으로만 드나드는 좀 특이한 청년이다. 사람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조용히 살아가는 박성호의 맑은 눈이 유난히 반짝인다.
정신과의사 정은표(정신경 역)의 당직일, 창문을 넘어 들어온 박성호가 대본하나를 건네며 연극을 올리자고 제안한다. 그 대본은 박성호 자신의 일생을 담은 이야기로 정신병동의 연극놀이로 활용된다. 극중 정은표는 정신과 의사 ‘정신경’, 박성호의 고향 ‘면장’, 보험회사 ‘지사장’, 술집주인 ‘설 니꼴라이’, 서커스단원 ‘병만’ 등으로 변신해 박성호가 가는 곳곳마다 감초 같은 역들을 소화해냈다.
‘밀키웨이’무대는 관객과 대놓고 대화를 시도하는 소극장의 매력을 활용했다. 관객에게 무대소품을 옮기는데 도와달라며 청하고 박성호가 살아온 여정을 잔잔하게 되짚어준다. 길고 긴, 험난한 박성호의 삶을 내레이션으로 빠르게 읊어주는 효과다.
박성호가 자신의 존재를 상실한 채 어두운 과거 속에서 찾아대는 한줄기 희망은 어두운 곳에서 빛을 발하는 은하수를 바라보는 것과 일치한다. 타의에 의해 자신을 상실했어야 했던 맑고 순수한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뤘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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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밀키웨이’ 공연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