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대호 객원기자] 겨울철만 되면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선수들이 있다. 나이 30대 중반을 넘어서면 기량에 상관없이 해마다 생명연장을 위해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 프로야구 선수들이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한때는 야구장을 쥐락펴락하던 스타플레이어들이 구단으로부터 은퇴압력을 받거나 아예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야구천재' 이종범(38)이 타의에 의해 은퇴를 결정해야 하는 수모를 겪고 있으며, 두산과 롯데의 프렌차이즈 스타 안경현(38)과 염종석(35)은 방출통보를 받고 차가운 거리에 내앉았다. 구단에선 더 이상 팀에 보탬이 안 된다는 이유로 '용도폐기'를 선언한 셈이고, 선수 자신은 더 뛸 수 있다고 몸부림을 친다. 왜 구단에선 고참들을 정리하려고 애쓰는 것일까. 반대로 선수들은 떠밀려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하는 안쓰러운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구단이나 감독들은 고참선수들 나름대로 효용가치가 있다는데 동감한다. 비록 갈수록 파워가 떨어지고, 기동력이 저하되는 현상은 어쩔 수 없지만 요긴할 때 써먹을 수 있다. 특히 젊은 선수들에게 기대하기 힘든 경기를 풀어가는 요령이나 벤치에서의 역할 등은 베테랑들이 아니고선 할 수 없다. 고참선수들은 구단의 처사에 섭섭해 한다. 지난 해 구단의 세대교체 계획에 밀려 은퇴한 한 선수는 "성적과 팀 공헌도를 놓고 비교하면 젊은 후배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데도 은퇴를 종용받는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뛰기 위해선 해마다 더 뛰어난 성적을 거둬야 하는데 그런 선수가 몇 명이나 있겠냐"고 아쉬워 했다. 이 선수는 "구단이나 감독이 고참들의 활용도를 좀 더 넓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종범 안경현 염종석 등은 선수생활 지속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아직 은퇴할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이들은 올 시즌 기량이 급속도로 쇠퇴한 것도 아니다. 단지 예전만큼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거나 팀 내 비중이 약화됐을 뿐이다. 유니폼을 벗어야할 만큼 실력이 형편없어 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수들이 은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구단이나 각 팀 감독의 의중은 다르다. 구단에서 고참들을 정리하는데 일종의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세대교체' 필요성이다. 고참들이 오랫동안 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으면 젊은 유망주들이 클 수 없기 때문이다. 구단 입장에선 거액의 계약금을 주고 영입한 유망주가 선배들에 막혀 제 자리를 찾지 못하면 큰 손실이다. 구단에서 감독에게 대놓고 젊은 선수 기용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감독 역시 똑 같은 기량이라면 오랫동안 활용할 수 있는 나이 어린 선수에게 기회를 주게 된다. 세대교체에 실패해 주전급 선수 가운데 고참들 비중이 크면 그 후유증이 심각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두 번째론 높은 연봉을 꼽을 수 있다. 10년 이상 1군에서 프로생활을 한 선수는 대부분 억대 연봉을 받는다. 구단에선 전성기를 지난 선수에게 계속해서 고액의 연봉을 지급하는데 부담을 느낀다. 그렇다고 일정 성적을 거둔 선수에게 무턱대고 연봉삭감을 주장할 수도 없다. 마지막으론 감독의 의지다. 국내 프로야구 감독들은 대부분 젊고 빠른 팀컬러를 선호한다.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에 고참들은 따라오기 버겁다. 감독으로서도 산전수전 겪은 고참들에게 강압적으로 주문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감독은 자신의 지도철학을 잘 따라와주는 선수를 기용하게 된다. 팬들은 젊고 패기있는 팀도 좋아하지만 묵은 된장 같은 오래된 스타플레이어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야구장을 찾기도 한다. 해마다 야구장을 떠나는 고참들의 뒷모습이 쓸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종범-안경현-염종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