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무대에서 ‘난타’ 공연을 흥행시킨 공연 기획자 송승환이 “이제는 언어 있는 고연으로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송승환은 26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무릎 팍 도사’에 출연해 “미국 브로드웨이를 뛰어 넘고 싶다”는 고민 아닌 고민을 털어놨다. 송승환은 아시아 최고로 미국 브로드웨이에 입성하고 국내 최다 관객 동원의 무언어(넌버벌Nonverbal) 퍼포먼스의 제작자다. 그는 이제 “언어 있는 공연으로” 브로드웨이 진출하길 희망하고 있다. 송승환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9살부터 아역으로 연예계 입문해 중1때부터 집안의 가장으로 네 식구의 생계를 책임졌다. 하지만 아역 연기자 생활로 받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고 1980년쯤 돼 ‘젊음의 행진’하면서 벌이가 괜찮아졌다. 이제 막 개런티 올라가고 섭외 늘어가며 인기 상한가를 달리던 1985년 그는 뉴욕 유학을 결정했다. 송승환은 당시를 회상하며 “100명 중 99명이 말렸다. 하지만 갑자기 생각한 일은 아니다. 1983년에 최초 해외로케 촬영한 드라마 ‘불타는 바다’에 출연했다. 드라마 끝나고 혼자 80일 동안 유럽, 뉴역 여행을 했다. 그때 받은 충격이 너무 컸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고 느꼈다”며 당신을 회상했다. 이어 “다양성에 충격을 받았다. 가 보니 별별 공연이 다 있었다. 발 한 마디 없는 공연, 인형 나오는 공연 등 너무 다양했다. 많은 것을 버리고 갔지만 그 때 아니면 못 갈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4년 유학후 돌아온 그는 음반 제작에 뛰어 들었고 강수지, 변진섭, 이승철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박진영이 오디셔을 봤지만 “외모 때문에 탈락시켰다”며 후회하는 모습도 비쳤다. 그는 연극, 뮤지컬 등 공연을 제작하고 싶어 음반 제작을 포기했다. 1998년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영국 사람들을 상대로 ‘난타’ 수출에 실패했지만 1999년 미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참가를 계기로 세계 시장에 ‘난타’를 수출할 수 있었다. 송승환은 “국내 시장에서는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라 세계 시장을 처음부터 겨냥했다. 세계 시장 진출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언어다. 때문에 언어 없는 공연을 기획했다. 이제는 언어 있는 공연으로 브로드웨이를 뛰어 넘고 싶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관객의 힘이 필요하다. 미술관도 가고 공연장도 가면서 문화를 많이 찾아달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miru@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