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e스포츠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누가 프로리그 100승을 먼저 하느냐"라는 얘기가 화제인 적이 있다. 당시 후보는 여러 명이 있었다. 현재 기록을 진행중인 '천재' 이윤열(24, 위메이드), '영웅' 박정석(25, 공군), '본좌' 마재윤 등 같은 쟁쟁한 선수들 거론하는 이도 있었지만 감독들의 이름을 뽑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적었다. 왜냐면 감독이라는 자리는 그 만큼 힘든 자리니깐.
그런데 프로리그 100승을 가장 먼저 해낸 인물로 e스포츠 역사에 한 명의 감독이 이름을 올리게 됐다. 바로 CJ 엔투스 조규남 감독(37)이 그 주인공이다. 책읽기를 좋아하던 평범한 쳥년에서 이제는 e스포츠 최고의 명장으로 거듭난 그를 프로리그 정규시즌 최초 100승을 기록한 지난 11월 26일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CJ 엔투스 연습실에서 만났다.
우연하게 뛰어들은 e스포츠
평소 조규남 감독을 보노라면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독특함을 느낄 수 있다. 그와 5분만 얘기를 하다보면 키가 크고, 덩치가 장대하지는 않지만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우리 속담이 실감날 수 밖에 없다. 그만큼 그가 풍기는 인상은 강하다.
기업팀 형태가 아닌 비스폰 게임단 시절부터 묵묵히 팀을 꾸려오면서 얻은 '강인함'과 '통솔력'은 e스포츠 프로리그 정규시즌 최초 100승의 밑거름이 됐다.
처음부터 명장 조규남은 아니었다. 조 감독은 "처음부터 이 곳에 뜻이 있지는 않았어요. 10년전 이 맘 때쯤 일거에요. IMF로 온 나라가 위기에 빠져 있을 때 그 당시 일본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환율이 너무 올라가는 거예요. 그러다가 99년부터 게임쪽 분야가 본격적으로 산업화되면서 매력을 느꼈죠. 처음에는 게임기획쪽을 생각해서 스폰서십으로 대회 유치를 시작했습니다. 아마 2000년 쯤이겠군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당시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스타크래프트에 눈이 돌아가게 됐죠. 돌봐주는 선수들이 생기고, 우연히 게임아이 이노츠사에서 감독 제의가 들어와 2001년 9월부터 감독이 됐습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감독 조규남의 인생은 순탄치 많은 않았다. 2002년 2월 이노츠 게임단은 자회사의 부도로 문을 닫고 말았다. 원만한 사람이라면 포기했을 법도 한 상황서 조 감독은 게임단 창단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그 결과가 e스포츠 역사상 가장 강한 팀, G.O의 탄생이었다.
"감독이 되고 나서 6개월 만에 회사가 부도가 난거죠. 그 당시 같이 있던 선수들 김동준, 이재훈, 최인규, 김가을, 김영미 등 5명은 계약 선수였어요. 지금 우리팀 코치를 하고 있는 김동우 코치도 당시 2000년에는 프로게이머 였고요. 그대로 손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일단 앞 뒤 가리지 않고 해보자는 마음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두 달 뒤인 4월 지금 온게임넷 해설인 (김)정민이가 합류를 하면서 G.O를 만들게 됐습니다. 그 해에 (강)민이, (서)지훈이, (박)태민이, (이)주영이가 합류했고요."
쉽지 많은 않았던 시련의 연속, 그러나 열정이 넘쳤던
100승에 대한 감회를 물을 때 조규남 감독은 빠른 대답보다는 지긋하게 눈을 감으며 흐뭇한 미소를 떠올렸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팀이 조금 더 잘하는 상황이었으면 더욱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운 마음도 들고요. 저 뿐만 아니라 우리 판 자체에 좋은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조규남 감독은 G.O로 참가했던 2003년 KTF 에버 프로리그를 시작으로 2006년 CJ 엔투스 사령탑을 거쳐 13시즌만에 100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최인규, 김정민, 이재훈, 강민, 김환중, 서지훈, 박태민, 전상욱, 마재윤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선수들을 키워냈고 그동안 프로리그 1회 우승과 포스트시즌 7회 진출의 성과를 달성했다.
"CJ로 창단되고 나서도 쉽지는 않았지만 예전과 비한다면 모든 게 너무 좋아졌죠. 하지만 이전에는 낭만이 있었어요. 아마 저 뿐만 아니라 e스포츠에 아직 남아 계신 분들이나 떠난 분들 모두 공감하실 겁니다. 열정과 넘쳤던 시절이죠. 힘들다는 거를 느낄 수 있는 시간도 부족했어요. 그런 인고의 시간을 e스포츠가 오늘 같은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세대 감독인 조규남 감독에게 기억에 남는 선수를 묻자 "다 제 분신인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어 그는 "저랑 인연을 맺었던 선수들은 모두 잘된것 같아요. 정말 저는 행운아죠.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라는 말이 덧붙여졌다.
계속된 질문에 조 감독은 "특별히 꼽는다면 큰 일을 치를 때 선수들이 기억남네요. (강)민이를 보내야 했을 때, 그 전에 (김)정민이를 보내야 했을 때, (김)근백이를 보내할 했을 때 (박)태민이하고 (전)상욱이가 다른 팀으로 갔을 때가 가장 큰일 이었고요. 그런 와중에도 남아있었던 창단멤버들 재훈이, 지훈이, 주형이, 환중이, 재윤이, 형태, 영민이까지 소수였지만 모든 선수들이 다 잘해줬기 때문에 지금 100승이라는 얘기를 듣는다고 생각해요. 또 100승을 하기 까지 앞으로 CJ엔투스를 책임지고 나갈 정우, 영화가 있어 행복합니다"라고 말을 이어갔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
아무도 하지 못한 정규리그 100승을 일궈냈지만 조 감독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자기의 열정이 들어간 e스포츠가 더욱 세계적으로 성장해 나아가길 원했고,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선수들에게 무언가 남겨주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모든게 아직은 조심스러운 것 같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성장해온 이 곳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크고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선수들에게 뭔가를 주고 싶네요. 10대 후반서 20대 초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e스포츠에 피땀을 쏟는 친구들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이어 조 감독은 "스포츠와 e스포츠를 많이들 비교하시는데 다른 스포츠는 30년~40년의 역사가 있기도 하고 심지어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건 이제 10년이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전문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시장 인프라가 커지고, 체계적인 발전을 위해서 우리의 할 일은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지 정체하지 않고 변화 발전할 수 있고요. 저 역시 e스포츠에 있는 동안은 사명감을 버릴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만큼 매력있는 곳이기고 하고요"라며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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