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사상 최초로 열렸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야구가 4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을 때 한국야구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투구수 제한'도 한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대회를 주도했던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메이저리그 선수노조는 선수보호를 명분으로 투수들의 투구수를 제한한 것이 결과적으로 한국 대표팀에 유리했다는 평가였다.
1회 대회때 대회 조직위는 예선 라운드에서는 65개, 결선라운드에서는 80개, 준결승과 결승에서는 95개 이하로 투구수를 제한했다. 투수의 혹사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또 공을 던진 회수에 따라 하루에서 많으면 나흘 동안 의무적인 휴식을 취해야 했다. 이에 따라 30명의 엔트리 중 투수를 최소 13명 이상 포함시켜야 했다. 2회 대회때도 투수는 무조건 13명 이상을 포함시켜야 한다.
그런데 내년 3월 열리는 제2회 대회를 앞두고 ‘투구수 완화 조짐’이 일고 있어 한국 대표팀을 긴장시키고 있다. 한국인 지난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WBC 실행위원회에서 ‘1회 대회때처럼 투구수 제한을 둬야 한다’는 쪽에 찬성표를 던진 상황이다.
반면 아시아지역예선서부터 맞대결을 펼쳐야 하는 라이벌 일본은 ‘투구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엔트리가 30명에서 28명으로 줄었고 패자부활전 형태가 도입돼 경기수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일본측 주장의 논거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2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국 프로야구 윈터미팅 중 일부에서 투구수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일본 언론들이 일제히 알렸다. 이미 지난 9월 결정된 사항(1회 대회 때 규정 적용)을 번복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일본측이 꾸준히 요구하고 있어 향후 결과가 주목된다.
류현진-김광현으로 이어지는 특급 ‘좌완 듀오’가 버티고 있는 한국 대표팀도 ‘투구수 완화’가 크게 나쁘지는 않지만 1회 대회 경험으로 미뤄볼 때 투구수가 이전처럼 제한적인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한국처럼 비슷한 수준의 투수들이 많은 팀은 투구수에 따른 적절한 투수교체로 상대 공격의 맥을 끊을 수 있다. 1회 대회 때는 투수 출신인 김인식(한화) 감독과 선동렬(삼성 감독) 투수코치가 기가 막힌 마운드 운용으로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선발 투수가 등판하면 140개 이상도 던지며 7이닝 이상을 소화하는 경우가 많은 일본 야구로서는 투구수 제한이 반가울리 없다. 그래서 WBC 조직위에 투구수 제한 완화를 꾸준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바람대로 투구수 완화가 이뤄질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 애초부터 투구수 제한이라는 것이 대회를 주도한 메이저리그 측이 빅리거들을 참가시키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방안이기 때문이다. 3월초부터 투구수를 서서히 끌어올리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짜낸 방안이다. 투구수 제한이 없으면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협조도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sun@osen.co.kr
지난 8월 베이징 올림픽서 금메달을 딴 후 기뻐하는 한국야구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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