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김정민, "배터리는 강한 신뢰가 바탕되어야"
OSEN 기자
발행 2008.12.17 10: 11

"개개인의 능력보다 서로의 믿음이 우선해야 한다." 높은 파도가 일렁이는 순간에도 그는 묵묵히 팀을 지켰다. 16시즌 동안 LG 트윈스를 지켜온 베테랑 포수 김정민(38)이 자신의 포수론에 대해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16일 잠실구장에서 자율 훈련에 열중하던 김정민은 "얼마 전 연봉협상을 했는데 내년에도 선수로 뛰게 될 것 같아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정민은 지난 시즌 후 팀 사정에 의해 은퇴를 1년 만에 번복한 뒤 다시 마스크를 썼으나 71경기서 3할3리 1홈런 17타점을 기록하는 동시에 안정된 투수 리드를 보여주며 기량을 과시했다. 팬들 또한 2008시즌 우울한 가운데서 제 몫을 해낸 김정민에 대해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민은 개인 성적보다 올시즌 최하위(46승 80패)에 그친 팀 성적에 대한 아쉬움을 먼저 털어놓았다. "전 LG에서 만년 백업 요원으로 살아 온 사람입니다. 개인적인 목표보다 팀의 최고령 선수로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했는데 팀이 최하위에 그쳐 제 몫을 하지 못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올해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후배들과도 자주 이야기하면서 다음 시즌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지난 6월 3일 두산으로 이적한 최승환(30)을 비롯해 LG를 거친 여러 선수들은 김정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잠시 마스크를 벗고 있던 2007년을 제외하고 15시즌 동안 포수로 활동했던 그에게 '배터리가 갖춰야 할 가장 최고의 덕목'을 물어 보았다. 그러자 김정민은 기술적인 면이 아닌 투수-포수 간의 신뢰 관계를 중시했다. "경기 전 투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공을 받고 구위와 구질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는 편입니다. 어떻게 보면 투수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는 일이 될 수도 있는데요.(웃음) 포수는 투수가 상대를 공략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를 더욱 살려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만큼 배터리가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지고 이게 더더욱 쌓이면 굉장히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나 싶어요" 경기를 지켜보다 보면 여러 유형의 포수를 볼 수 있다. 투수의 능력을 살려주는 포수가 있고 타자의 약점을 찌르는 포수가 있는 반면 경기 양상과 흐름에 따라서 가변적인 태도를 취하는 포수도 있다. 김정민에게 자신의 스타일을 막연하게 묻자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일단 상대의 약점을 데이터로 연구한 뒤 마운드의 투수가 어떤 공을 잘 구사하는 지 생각해 봐야겠죠. 하지만 타자의 약점이 되는 코스라도 투수가 그 쪽을 공략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 경우에는 상대의 약점보다 투수의 강점을 살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한 김정민은 친절한 예시를 덧붙였다. "만약 타자가 몸쪽 커브에 약점이 있는 것을 알아도 투수가 몸쪽 커브를 구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문을 강요하기는 어려워요. 그때는 투수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공과 코스로 리드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투수가 자신있어 하는 코스를 주문했다가 실패해도 이는 마운드의 투수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투수가 자신없어 하는 코스를 무조건 강요했다가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투수 개인의 성장에도 지장을 줄 수 있으니까요"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로도 활약한 뒤 1993년 영남대를 졸업하고 LG에 입단한 김정민은 어찌 보면 다소 불운한 선수 생활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데뷔 초기에는 김동수(40. 히어로즈)라는 대형 포수가 주전 자리에 버티고 있었고 1998년에는 조인성(33)이 입단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전 마스크를 썼다. 실력을 갖췄음에도 '2인자'에 익숙했던 김정민에게 그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밖에서 보기에는 불운하다는 평가도 나오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그 반대로 생각합니다. 물론 저 또한 벤치를 덥히면서 '어렵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만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는 대신 백업 선수들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직접 느끼면서도 경험한 게 많거든요. 훗날 지도자가 되었을 때 소외된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선수 생활을 돌아봤을 때 불운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김정민의 플레이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가 '공을 세심하게 받는다는 점'이다. 그의 포구를 집중해서 보다보면 가끔 '공중에서 떨어지는 아기를 받는 듯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포구에 대한 지도를 많이 받았습니다. 만약 경기를 하다가 포수가 확실하게 공을 잡아내지 못한다면 투수는 물론 수비에 나선 야수들의 마음에도 불안감이 싹트게 마련입니다. 포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투수가 경기를 풀어나가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정민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던 부분은 바로 봉중근(28)과의 호흡이었다. 김정민-봉중근 배터리는 바깥쪽 공으로 유리한 카운트를 이끈 뒤 몸쪽 공을 결정구로 삼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봉중근은 올시즌 11승 8패 평균 자책점 2.66을 기록하며 LG의 좌완 에이스로 우뚝 섰다. "지난해 이맘때 호주에서 마무리 훈련을 했었어요. (봉)중근이가 첫 해 투구 밸런스가 무너지고 유인구가 턱없이 빠지는 바람에 고전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도움을 주고자 공을 직접 받아봤죠. 그런데 구위가 너무 좋더라구요. 상대 타자들에게 맞아 나갈 공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뒤이어 김정민은 봉중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봉)중근이가 정말 열심히 훈련했거든요. 고생한 만큼 오기가 생겨서 마운드에서도 자신감 있는 피칭을 하더라구요"라며 운을 뗀 그는 "바깥쪽 공을 칠 수 없는 유인구로 가져가기보다 차라리 타자가 칠 수 있는 코스로 가져가라고 주문했어요. 맞아 나갈 구위가 아닌 만큼 타자가 '때려낼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공을 던지라고 이야기했는데 결과가 좋아 다행입니다"라며 웃었다. 오랫동안 포수 마스크를 썼던 김정민이었던 만큼 포수 포지션에 대한 애정 또한 대단했다. 최근 아마추어 야구계서 어린 선수들이 포수 맡기를 꺼려하는 데 대해 김정민은 자신의 지론을 밝혔다. "포수 자리는 어려운 포지션입니다. 개인 훈련 이외에도 투수들의 훈련에도 참여해서 많은 공을 받아주다보면 무릎이 빠질 것 같이 아플 때도 있지요. 그러나 장기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포수를 했던 선수들은 희소가치를 지녔기에 유니폼을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것은 물론 훗날 코칭스태프로도 오랫동안 활약할 수 있습니다. 야구에 대한 애착이 많은 선수들이라면 오랫동안 야구를 지속할 수 있는 포수를 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김정민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야구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 의식이 담겨 있었다. 오랫동안 LG를 지킨 '소나무' 같은 포수 김정민이 다음 시즌 LG의 부활을 함께하며 웃음 지을 수 있을 지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farinelli@osen.co.kr 온라인으로 받아보는 스포츠 신문, 디지털 무가지 OSEN Fun&Fun, 매일 3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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