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빙그레 다이나마이트 삼총사] (하) 이강돈, "인기는 내가 최고"
OSEN 기자
발행 2008.12.26 08: 54

"2번 타자는 중심 타선에 득점 찬스를 이어주기 위해 번트 작전도 많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히트 앤 런' 사인이 나와도 무난히 소화했다. 1사 2루보다 무사 1,2루가 훨씬 낫지 않나". 빙그레의 다이나마이트 타선을 이끈 이강돈(47) 청주고 감독은 현역 시절 최고의 2번 타자로 군림했다. 대구상고-건국대를 거쳐 지난 1986년 빙그레에 입단한 이 감독은 12년간 1217경기에 출장, 타율 2할8푼4리 1132안타 87홈런 556타점 533득점 88도루를 기록했다. 이 감독은 3년 연속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1988~1990년), 최다 안타(1989, 1990년)와 득점(1990년) 1위, 빙그레 창단 첫 사이클링 히트(1987년 8월 27일 잠실 OB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감독이 기억하는 다이나마이트 타선은 완벽에 가까웠다. "김상국, 조양근 등 하위 타선도 때리면 넘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춰 우리 팀이 강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강정길 경북고 감독과 이정훈 천안 북일고 감독 등 대구 출신 3인방의 맏형인 그는 "(강)정길이는 만만디였고 (이)정훈이는 다혈질이었다. 나도 급한 편이지만 다혈질은 아니었다"며 "그런 성격에도 충청도 사람들의 여유 가득한 기질과 잘 어울려 뭔가 해내지 않았을까"라고 평가했다. 대구 출신 3인방은 공통점이 많다. 고향, 좌타자, 고교 사령탑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졌다. 이 감독은 한 마디를 던졌다. "한 가지가 빠졌네. 셋 다 잘 생겼다는거". 이 감독은 "강 감독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는 말에 대해 "자기가 그래요"라고 반문한 뒤 "인기로 따지면 내가 최고였다. 자기는 그렇게 말할지 몰라도 서로가 프라이버시가 있는 것이다. 내가 말은 안 했지만 가장 바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역 시절 타향에서 성공의 꽃을 피운 빙그레 다이나마이트 삼총사는 나란히 아마 지도자로 활동하며 후임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이 고교 야구 정상을 차지하기 위해 열띤 경쟁을 벌이는 모습도 지켜볼만 할 듯 하다. what@osen.co.kr 한화 이글스 제공. 온라인으로 받아보는 스포츠 신문, 디지털 무가지 OSEN Fun&Fun, 매일 3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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