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언제나 조용한 모습이었다. 2006시즌 16승 8패 평균 자책점 2.95로 커리어 하이의 성적을 기록할 때도, 불운으로 인해 호투가 승리로 연결되지 못할 때에도 그는 묵묵히 제 역할을 해냈다. 두산 베어스가 26일 외국인 투수 맷 랜들(31)에게 '재계약'이라는 뒤늦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주었다. 계약금 5만 달러에 연봉 25만 달러로 전년도 연봉 23만 달러(계약금 8만 달러)에 비해 총액 대비 1만 달러가 감소한 금액에 계약을 체결했다. 올시즌 두산 투수들 중 유일하게 규정이닝(126이닝)을 돌파했던 랜들은 9승 9패 평균 자책점 4.48을 기록하며 지난 4시즌 중 가장 안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포스트 시즌서는 주축 선발 투수 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김경문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의 믿음을 회복했다. 랜들은 '선발 투수들의 지옥'과도 같았던 2008 포스트 시즌서 첫 퀄리티 스타트 테이프(10월 30일 한국시리즈 4차전 SK전, 7이닝 8피안타 3실점)를 끊었다. 또한 포스트시즌 도중 바다 건너 전해진 부친상 비보에도 불구, 한국시리즈 1차전서는 5⅓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선발승을 거두며 만점 활약을 펼쳤다. 강렬하지는 않았으나 팀을 위해 묵묵히 호투를 펼친 랜들에 대한 김 감독의 믿음도 되살아 났다. 전성 시절에 비해 직구 구위가 떨어진 데 대해 "이제는 어렵지 않겠는가"라며 재계약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여주기도 했던 김 감독은 포스트 시즌서 랜들의 노련미가 발휘되자 "다음 시즌에도 랜들과 함께하고 싶다"라며 그에 대한 믿음을 다시 보여주었다. 올시즌 랜들의 투구는 허점도 많았다. 150⅔이닝 동안 171개의 안타(3위)를 기록하며 구위가 떨어졌음을 기록으로 절감하게 했으며 스트라이크 존 모서리 제구에도 어려움을 겪으며 이닝 당 17.01개로 비교적 많은 공을 던졌다. 이닝 당 주자 출루 허용률(WHIP) 또한 1.46으로 치솟으며 4년 연속 두 자리 승수 달성의 장애물이 되었다. 두산이 랜들을 재신임한데는 국내 무대 적응까지 마친 랜들만한 외국인 투수를 찾기 힘들다라는 이유 외에도 진지한 자세로 야구에 임하며 팀워크를 해치지 않았다는 이유도 크다. 8시즌 동안 두산의 외국인 선수 통역을 맡았던 이창규 대리는 랜들에 대해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내는 동시에 팀 내 귀감이 되는 선수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베이징 올림픽 휴식기 도중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베어스 필드서 훈련에 열중했던 랜들은 쉬는 시간을 틈타 이원재(20), 임태훈(20) 등 젊은 투수들과 이야기하며 "어깨가 일찍 열려 제구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왼쪽 팔꿈치가 오른쪽 어깨와 일직선상에 오기 전까지 먼저 상체를 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조언을 건넨 적이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외국인 선수인지 알 수 있게 한 장면이었다. 리그를 장악하는 뛰어난 성적도 중요하다. 그러나 랜들은 선수단에 좋은 영향을 끼치며 유망주들의 성장에도 힘을 보탰던 보기 드문 외국인 투수였다. 그의 재계약은 단순한 '이방인'의 잔류가 아닌 '믿음'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farinelli@osen.co.kr 온라인으로 받아보는 스포츠 신문, 디지털 무가지 OSEN Fun&Fun, 매일 3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