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의 영화산책]한국영화의 3대 배급사를 얘기할 때면 대개 CJ와 쇼박스, 그리고 롯데를 들게 된다. 셋 다 재벌 그룹을 모태삼아서 전국적인 멀티플렉스망을 갖췄고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영화 배급망을 주무르고 있기 때문. 그러나 3대 배급사라는 허울과 달리 한국영화의 주류로 대접받는 CJ 쇼박스와 달리 롯데는 모그룹 명성에 의존할 뿐 아웃사이더로 변방에 머물렀다. 물론 셋 사이의 우열은 언제나 유동적이다. 한때 2강1약, 즉 CJ와 쇼박스의 양강 구도에 롯데가 명함만 내밀고 있는 듯하던 구도는 지난 해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알짜배기 영화를 기가 막히게 골라내는 혜안으로 CJ의 자금력에 맞섰던 쇼박스가 몇 차례 찬 서리를 맞으면서 1강 2약 구도로 바뀌는 분위기다. CJ CGV와 CJ엔터테인먼트의 모그룹은 이름 그대로 CJ. 쇼박스는 오리온 그룹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하며 첨병으로 내세웠고 롯데시네마는 롯데그룹 소속이다. 3대 배급사 모그룹의 공통점은 바로 국내 식품업계를 좌지우지하는 큰 손들이라는 것. 특히 CJ와 쇼박스는 각각 그룹 창업주의 실세 딸들이 엔터 사업 주도권을 놓고 한 판 싸움을 펼치는 것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쇼박스가 멀티플렉스 메가박스를 매각 처분한 데 이어 영화사업 자체를 포기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한 게 현실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쇼박스는 지난해 '님은 먼곳에' '고고70' '다찌마와 리' 등 기대했던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 참패를 겪으면서 엄청난 손실을 봤다. 연말마다 CJ와 매출 1위를 놓고 경합을 벌였던 수 년전과 비교하면 참담한 현실이다. 이에 비해 롯데는 은근히 '1강1중1약' 구도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힘 빠진 듯한 쇼박스를 밀쳐내고 일단 2인자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심이다. 모그룹 규모에서는 3사 중에 월등하게 앞서지만 영화 사업을 놓고 볼 때 늘 최약자로 지목됐던 불명예를 씻으려는 의도다. 그 꿈은 실현될 수 있을까. 롯데는 2008년 연말 회심의 안타 한 개를 날렸다. 결정타는 아니지만 대량 득점의 물꼬를 틀수도 있는 진루타라는 점에서 관계자들의 얼굴에 웃음꽃을 전염시키는 중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과속 스캔들'. 변변한 히트작 하나 내지 못했던 롯데가 엉겁결에 터뜨린듯한 대박 영화다. 불과 20억원대의 적은 예산으로 제작한 이 영화는 지난해 12월 3일 개봉후 입소문을 무섭게 타면서 12월28일까지 전국 400만명 관객을 돌파했다. 사실상 제작비 대비 수익률로는 2008년 개봉 영화 가운데 최고일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롯데란 이름값을 못했던 롯데시네마가 2009년에는 어떤 변신을 선보일지가 궁금하다. mcgwir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