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2009년의 해가 밝았다. 어려운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1월 연극무대는 작품성과 연기력으로 똘똘 뭉친 기대작들이 대거 등장했다. “극단적인 현실을 쇼킹하게 그렸다”…연극 ‘너무 놀라지 마라’ 목을 매 자살한 아버지 옆에서 변함없이 시나리오 수정 작업만 계속 하는 남편, 이내 밤이 되자 아내는 어김없이 노래방 일터로 나서고 시동생은 축 늘어진 아버지의 시신 아래에서 찬밥을 차려 먹는다. 싸늘한 아버지 시신 곁에서 똑같은 일상생활을 계속하는 슬픈 가족의 현실을 그린 연극 ‘놀라지 말라’에 충격적인 스토리에 주목해본다. 2008년 소극장 산울림은 ‘한국 신연극 100년’을 맞아 임영웅, 심재찬, 김광보, 박근형, 이성열 등 한국 연극계에 내로라 하는 연출가들의 국내외의 화제작, 우수작품을 연달아 무대에 올렸다. 그 첫 번째 무대였던 ‘달이 물로 걸어오듯’(고연옥 작, 임영웅 연출)과 ‘방문자 Le Visiteur’(에릭-엠마뉴엘 슈미트 작, 심재찬 연출), ‘죠반니’(베쓰야쿠 미노루(別役 実) 작, 김광보 연출)에 이어 박근형 작-연출의 ‘너무 놀라지 마라’를 선보인다. 연극 ‘너무 놀라지 마라’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가족들에게 닥친 부조리한 현실을 쇼킹하게 그렸다. 자신의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 고군분투하는 영화감독 남편과 밤새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는 아내, 그러던 어느 날 시아버지가 유서 한통 달랑 남기고 목을 매 자살 한다. 하루살이에 급급해 아버지의 죽음 앞에 슬픔의 눈물조차 흘릴 줄 모르는 이들의 모습은 현대사회의 해체되는 가정 속에서 상실된 가족애를 극단적으로 그렸다. 배우 장영남, 이규회, 김영필, 김동현, 김주완 등의 주목받는 연극배우들의 열연해 또한번 기대를 모으는 연극 ‘너무 놀라지 마라’는 오는 1월 7일부터 2월 1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교동 소극장 산울림에서 공연된다. “윤석화의 닥터 리빙스턴, 전미도의 아그네스”…연극 ‘신의 아그네스’ 1983년, 실험극장 초연 당시 아그네스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배우 윤석화(53)가 2009년 판에서는 ‘닥터 리빙스턴’ 역을 맡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연 시작 전부터 눈길을 끌었던 작품이다. 게다가 아그네스 역의 전미도(27)가 ‘제 2의 윤석화’라는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는 두 배우의 덕에 관객몰이가 한창이다. ‘신의 아그네스’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는 원작의 특성상 연출가의 해석과 표현에 따라 매번 다른 색깔의 무대를 선보여온 작품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영화 ‘고스트 맘마’ ‘하루’ ‘싸움’과 드라마 ‘연애시대’을 만든 영화감독 한지승(42)이 처음으로 연극 연출을 맡아 연극계와 영화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수녀가 아기를 낳고, 아기가 죽은 채 휴지통에서 발견된’ 충격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믿음을 둘러싼 진지한 질문과 섬세한 심리묘사로 인해 ‘현대인의 성서’ ‘여자들의 에쿠우스’라고도 불리는 작품이다. 주인공 아그네스와 그녀를 둘러싼 두 여인의 변화를 통해 ‘신의 아그네스’는 이 시대의 기적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기적이란 신과의 관계가 아닌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암시한다. 원장수녀 역에 한복희와 지영란, 아그네스 역에 전미도와 박혜정이 더블캐스팅 됐다. 윤석화의 뒤를 잇는 아그네스 전미도의 연기도 기대해 볼 만하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 작년 12월 6일부터 오는 2월 14일까지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공연된다. “극단 신기루만화경과 연출가 이해제”…연극‘설공찬전’ ‘로빈슨크루소의 성생활’로 논란을 일으켰던 극단 신기루만화경(대표 오달수)이 2009년 선보이는 연극 ‘설공찬전’으로 또 하나의 금서에 도전한다. 2002년 첫 선을 보였던 이해제 연출의 ‘설공찬전’은 1511년 문신 채수가 지은 동명 한글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작가 겸 연출가 이해제 씨가 2002년 ‘지리다도파도파 설공찬전’이라는 제목으로 초연한 바 있는 작품이다. 저승에서 돌아온 설공찬이라는 인물이 사촌종생의 몸을 빌려 현실정치를 비판한다는 내용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소문난 연출가 이해제의 작품인 데다 극단 신기루만화경의 작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된다. 연출가 이해제는 연극무대를 통해 따뜻한 인간애를 그리는 작품들로 재기 발랄한 성향을 드러내 왔다. 2008년 ‘쉐이프’와 ‘웃음의 대학’ 등의 재미있는 소재의 다양한 작품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배우 임진순, 정재성, 최재섭, 김영은, 김로사, 김은희, 이장원, 김태욱, 하치성, 이효진이 열연하는 극단 신기루만화경의 ‘설공차전’은 15일부터 28일까지 대학로 정보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영화도 아닌데, 반전의 재미가 있다?!”… 연극 ‘황야의 물고기’ “이런 연극도 있었나?”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케 하는 연극 ‘황야의 물고기’가 1월 소극장을 찾는 관객의 기대를 모은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권총을 든 배우들의 등장은 한편의 서부영화를 상상하게 만든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그린 ‘황야의 물고기’는 서부시대가 배경인 듯 하더니 아니었다. 일탈을 꿈꾸는 온라인 카페 비밀 모임이 만든 ‘서부시대’의 가상공간이다. 카페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서부영화를 상상했던 관객에게 반전의 충격으로 재미를 더했다. ‘서부극 놀이’를 벌이는 사람들의 황당한 극으로 시작도 흥미진진하다. ‘서부시대’ 손님들은 서부 시대 복장을 하고, 주어진 대본대로 말하면서 일종의 ‘서부극 놀이’를 한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어린 주부부터 전당포 아저씨, 고물상 주인에 이르기까지 배우들의 캐릭터가 각양각색이다. 이 작품은 ‘서부시대’라는 카페를 통해 현실 속에 펼쳐지는 쓸쓸함을 표현했다. 이리저리 치여 사는 현실 속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서부극놀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해방구 같은 기능을 한다. 연극에서 황야는 ‘현실도피구역’으로서 ‘서부시대’의 카페를 수단으로 정했다. 쓸쓸한 현대인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서부시대와 현실의 오버랩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권호성 연출의 ‘황야의 물고기’는 배우 진남수, 주유랑, 선욱현, 김정호, 정래석 등이 출연하고 3월 1일까지 소극장 모시는 사람들에서 공연된다. “작품상-연출상-희곡상”…연극 ‘발자국 안에서’ 극단청우의 2009년을 알리는 첫 작품, 연극 ‘발자국 안에서’는 2007년 첫 무대에서 서울연극제 작품상과 연출상, 희곡상을 휩쓸고 그해 12월 삿포로 아트스테이지 페스티벌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2008년 8월 도쿄 타이니알리스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받은 작품이다. ‘인류 최초의 키스’ ‘웃어라 무덤아’ 등에서 호흡을 맞춘 고연옥 작가와 김광보 연출가의 작품으로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과 인간관계를 ‘공간’을 활용해 표현했다. 살인사건이 있었던 변두리 동네 쌀집에 젊은 화가가 세를 든다. 영감이 느껴진다며 쌀집이 마냥 맘에 드는 젊은 화가는 갑작스레 찾아와 “30년간 쌀을 팔던 곳이니 쌀을 팔라”는 어처구니없는 마을 주민들의 요구를 듣게 된다. 젊은 화가는 동네사람들의 아우성에 그림을 그리며 셀프 서비스로 쌀을 팔게 된다. 금세 유명해져 손님은 줄을 잇고 동네 사람들은 김치와 담배도 팔 것을 제안한다. 날이 갈수록 동네사람들의 요구는 늘어만 가고 젊은 화가는 분개한다. 배우 이헌재, 김예리, 정규수, 심영민, 강승민 등이 출연하는 극단 청우의 연극 ‘발자국 안에서’는 3일부터 2월 1일까지 대학로극장에서 공연된다. jin@osen.co.kr 연극 ‘너무 놀라지 마라’ ‘설공찬전’ ‘황야의 물고기’ ‘신의 아그네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