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한 상황을 인정하고 있다". 나긋나긋했지만 강한 톤이었다. 달관한 듯 하면서도 절박함과 비장함이 함께 서려있는 목소리였다. 프로 13년차 내야수 손지환(31)은 데뷔 이후 가장 신중한 스토브리그를 보내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11일부터 SK 유니폼을 입었다. 지난 1997년 LG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를 밟은 이후 4번째 새 유니폼이다. 중간에 KIA와 삼성을 거쳤다. 그의 말대로 "예상치 못해 놀란" 삼성으로부터의 방출 소식에 고민하던 그는 2002년 LG 감독을 지낸 김성근 SK 감독의 부름을 받고 두말없이 인천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삼성에서 나온 것이 한국시리즈 3차전 때였는데 그 때 감독님께서 연락하라고 하셨다"고 밝혔다. 친정팀인 LG에서 영입의사를 나타내긴 했지만 김성근 감독 만큼 즉각적이지는 않았다. 방출 설움을 당한데 대해 "지금 무엇을 말한다 해도 변명이 될 수 있다"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내가 현재 처한 상황을 인정한다. 내가 부족해서 나오게 된 것이다. 노력도 부족했다"고 순순히 현실을 직시했다. 아쉬움도 전했다. 그는 작년 시범경기 때 왼쪽 발바닥을 다쳤지만 전 소속팀 삼성에 알리지 못했다. "KIA에서 이적하고 첫 시즌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잘해볼려는 욕심에 의욕만 앞섰다. 삼성에 미안하다"는 그는 "새로운 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고 다친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부상 부위에 계속 신경쓰다보니 움직임이 좋지 않았다. 타격 밸런스는 급격하게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그는 일찌감치 김 감독의 콜을 받고도 부상을 완쾌시킨 후 SK에 합류했고 곧바로 마무리 캠프였던 일본 고지로 날아갔다. 그는 "선수들이 다들 반겨주고 분위기도 좋다. 팀워크 참 좋은 팀이다"며 "우승팀인 만큼 내부 경쟁이 심하다. 다들 할려는 의지가 대단하다. 감독님이 공평하게 기회를 주시는 것 만큼 우선 캠프를 통해 1군에 진입하도록 노력하고 싶다. 부상없이 팀 우승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각오를 숨기지 않았다. 또 "나중에 그만두더라도 후회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뛰겠다"며 "스스로 한 번 이겨내보고 싶다. 1군이든 2군이든 도전해보고 싶다. 1경기든 10경기든 나가는 경기에서는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오후 9시 30분부터 문학구장에 나오는 그는 폴 혹은 인터벌 러닝을 주로 하고 오후 1시부터 4시까지는 타격 연습을 한다. 마무리 캠프 한달 동안 타격 인스트럭터를 통해 타격 폼을 교정하기도 했다. 끌어당기는 큰 스윙을 버리고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밀어치는 연습에 열중하고 있으며 중심이동도 공을 몸쪽까지 받쳐놓고 치는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손지환은 프로에 들어온 후 순탄치 않았다. 고교 초특급 유격수였던 만큼 이중등록 파문까지 겪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1997년 고졸우선지명으로 김민기(LG) 박만채(2006년 은퇴)와 함께 프로에 데뷔했지만 정착하지 못했다. 그런만큼 SK에 받은 등번호 67번이 더욱 반갑다. 그는 "휘문고 3학년 때 달던 배번이다. 당시 대통령기와 청룡기를 휩쓸어 2관왕을 차지했을 때였다. 당시에는 정말 나 스스로 생각해도 잘하던 때였다"며 "원래는 작은 김재현의 등번호였다. 그러나 수술로 한동안 전력에서 제외되면서 우연치않게 내게로 넘어왔다. 13년만"이라고 들뜬 표정을 지었다. "불러주신 감독님께 보답하겠다"는 그는 "항상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다. 반성도 하고 있다. 잘한다는 소리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한다'는 소리를 듣도록 노력할 생각"이라며 팬들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letmeout@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