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이 떠나간 한국대표팀, 그 '의미'는?
OSEN 기자
발행 2009.01.06 07: 51

[OSEN=김대호 객원기자] '국민타자' 이승엽(33.요미우리)이 국가대표에서 사실상 은퇴했다. 김인식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감독은 최근까지 이승엽의 참가를 기다리다 결국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인식 감독은 이승엽이 없는 대표팀을 짜겠다는 뜻을 밝히며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올 3월 WBC가 끝나면 당분간 큰 규모의 국제대회가 없어 이승엽이 태극마크를 단 모습을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이승엽의 나이로 볼 때 영원히 못 볼 수도 있다. 이승엽이 떠나간 한국야구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승엽은 1999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부터 대표팀에 뽑혔다. 이후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2006년 1회 WBC 4강 그리고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이승엽은 한국야구가 세계의 주목을 받을 때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이승엽이 한국야구의 중심으로 떠오른 지난 10여 년 동안 야구팬들은 그의 몸동작 하나하나에 웃고 울었다. 잘하면 '역시 이승엽'이었고, 못하면 '이승엽도 끝났다'고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한국야구를 거쳐 간 수많은 선수 가운데 이승엽 처럼 칭찬과 비난을 동시에 받은 경우도 없을 것이다. 이승엽은 주변의 이런 과도한 관심 속에서도 결정적일 때 한 방을 터트렸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 붙는 '국민타자'란 칭송이 전혀 아깝지 않다. 온 국민의 사랑과 때론 미움을 받았던 이승엽이 떠났다. 이승엽이 대표팀에 버티고 있는 동안 한국야구는 그의 한 방에 운명을 맡겼다. 이승엽이 터지면 이겼고, 침묵하면 졌다. 이승엽이 없는 한국야구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 김태균(27.한화) 이대호(27.롯데) 등 거포들이 건재하지만 이승엽 만큼의 질량감을 갖고 있지 않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승엽이 없는 한국타선을 만만히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야구는 언제부턴가 이승엽이 없는 '어려운 시기'를 준비해 왔는지 모른다. 한국야구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빠른 야구'가 그것이다. 한 박자 빠른 타격, 한 박자 빠른 베이스러닝, 한 박자 빠른 투수교체. 한국야구는 이 3가지 '전략'으로 세계야구의 변방에서 주류로 부상했다. 이승엽이 빠진 대표팀의 이 같은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상하위 타선 구분 없는 연쇄폭발과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날렵한 베이스러닝. 1974년 독일월드컵에서 네덜란드 축구가 '토털 사커'란 새로운 개념의 전법으로 돌풍을 몰고 온 것과 흡사하다. 이승엽의 대표팀 은퇴와 함께 한국야구도 새 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하고 있다. 달라진 한국야구의 모습이 3월 제2회 WBC에서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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