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처럼 좋은 소리 못듣잖아요". SK가 2년 연속 한국시리즈 2연패를 안은 데는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 특히 작년 우승에는 좌완 이승호(28)가 가장 큰 역할을 해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승호는 지난 2005년 10월 어깨 수술을 받은 후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끊임없는 재활에 매달린 결과 SK 원조 에이스로 부활할 수 있었다. 이제는 오는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후보 명단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려 태극마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끈질긴 재활의 승리였다. 이승호의 성공적인 재활 뒤에는 선수 본인의 노력이 전적이지만 재활군을 맡고 있는 SK 이병국(29) 컨디셔닝 코치의 노력도 한 몫했다. 이 코치에게 이승호와 엄정욱은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기간을 함께 해왔고 고통의 순간을 빼놓지 않고 봐왔기 때문이다. 그는 확실하게 부활한 이승호에 대해 기뻐하면서도 부활 문턱에 들어선 엄정욱에 대한 걱정스런 표정은 숨기지 않았다. "둘은 정말 고생스럽고 힘든 길을 이겨내왔다. 대견스럽다. 특히 지금 엄정욱은 피칭에 이제 막 돌입한 상태로 60~70%의 몸상태라 할 수 있다"고 말한 후 "앞으로 공을 어마어마하게 더 던져야 피칭에서 오는 통증을 이겨낼 수 있다.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단련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수술 후유증으로 전성기시절 던진 160km 같은 공은 나올 수 없을 듯 싶지만 그 과정을 이겨낸다면 다시 우뚝 설 것"이라고 밝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 코치는 지난 2006년부터 SK에 몸을 담은 그는 3년 동안 대부분 1군 선수들의 재활을 맡아왔다. 부상 전력이 있었던 선수는 거의 모두 그의 재활 손길을 거쳐야 했다. 그는 "부상으로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선수들은 심적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며 "재활선수들은 같은 것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던지고 치고 싶은 선수들이 매일 실내에서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 만큼 지겨운 것도 없다. 낙오하거나 심적으로 많이 침체에 빠진다. 그런 생활을 이승호와 엄정욱은 2~3년 넘게 반복했다"고 말했다. 그의 임무 중 하나는 이런 선수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화도 내고 어르기도 해야 한다. "재활코치는 엄마와 같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거의 대부분 선수들이 아프거나 뭔가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 나를 찾는다. 그 만큼 잘해도 본전 못하면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하는 직업"이라면서 "하소연도 들어주고 짜증도 받아줘야 한다. 정작 다 나으면 잘 안온다"고 웃었다. 이어 그는 "그런 선수들을 위해 나이가 많든 적든 어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선수를 혼내고 다그쳐야 할 때도 있는 만큼 다독거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고충을 살짝 털어놓았다. 또 작년 시즌 도중 등 통증을 호소했던 외야수 박재상 때문에 난감하기도 했다. 박재상은 계속 아프다고 하지만 MRI 등으로도 증상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재상도 1군에 안착해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2007시즌 투수 송은범도 2개월의 재활을 거쳤다. 급하게 재활에 나섰지만 작년 시즌 후 편도선 수술을 한 것 외에는 탈 없이 지금까지 잘 던지고 있어 고맙다. 정작 자신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른다. 그저 모든 일과를 마친 후 밤에 혼자 음악을 들으면서 계속 빈 그라운드를 뛰는 것이 전부다. 그도 대학(경희대) 2학년 때까지는 야구선수였다. 그러나 어깨를 다쳐 수술 후 6개월간 재활을 거치면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선수생활을 청산하고 지난 2003년 한경진 트레이너가 경영하던 '한스'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뛰어난 야구선수가 아닌 다음에야 나이 들어서까지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 절실했기 때문이다"며 "하루 만에 결정했다. 선배들이 프로구단에 지명받지 못하던 현실이 이 같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재활을 하면서 이쪽 계통에 계신 분들이 일하는 걸 보면서 멋있어 보였고 가족들을 안굶기겠다 싶어 더욱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그는 영어를 시작했고 경희대 대학원으로 진학, 학업에 열중했다. 선수들의 수술실까지 직접 참관하면서 뼈와 근육 구조를 알기 시작했고 피나는 공부에 매달렸다. 선수들의 재활을 도우면서 이론과 실기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선수경력이 점점 도움이 되고 있다. 그는 "재활군은 혼자 담당하고 있다. 캐치볼, 펑고, 배팅볼까지 혼자 다해내야 하는 만큼 예전에 야구를 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이렇게 던지면 안된다는 등 시범을 보이다 보니 오히려 선수시절보다 야구 기량이 늘어난 기분이다. 야구를 관두고 나니 야구가 보이더라"고 활짝 웃었다. 그는 다른 코치들이 가지지 못한 특권을 지니고 있단다. "가끔 선수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먹을 것을 챙겨주는 경우가 있다. 술부터 과자, 케이크까지 다양하다. 말하지 않아도 그런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 쑥스러워 말을 못하지만 고맙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보람을 느낀다". '엄마' 이 코치의 목표는 강단에 서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하는 일에 무척 만족한다. 앞으로 10년~15년 정도 더 경력을 쌓고 싶다"며 "언젠가 모교인 경희대 강단에 서고 싶다. 이 계통 과목에 이론 외에 실기와 현장 경험을 지닌 지도자는 거의 없는 만큼 내가 한 축을 담당하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계통 후배들에게 "전문가가 돼야 한다. 선수에게는 의사에 가까운 만큼 의사와 버금가는 전문적인 지식도 갖춰야 한다. 항상 마인드를 오픈해둬야 하고 직업에 대한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letmeout@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