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컵스 이학주, "동양인 유격수 편견 없애겠다"
OSEN 기자
발행 2009.01.13 08: 25

"일단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하는 게 급선무에요." 뿌리 깊게 박힌 세상의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오랜 시간 동안 쌓인 벽을 눈앞에 두고 일찍 발길을 돌려 세우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187cm의 '장신 유격수' 이학주(19. 시카고 컵스)는 그런 의미서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절로 자아내는 유망주다. 충암고 시절 경기고 오지환(19. LG), 서울고 안치홍(19. KIA), 경북고 김상수(19. 삼성), 광주일고 허경민(19. 두산) 등과 함께 유격수 유망주로 아마추어 야구 팬들의 주목을 받았던 이학주는 지난해 4월 컵스와 일찌감치 계약을 맺고 자신의 진로를 확정지었다. 고교 시절 투수와 유격수를 병행하다 지난해 10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던 이학주는 '장신 유격수는 성공하기 힘들다'라는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겨우내 재활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국내 야구는 물론 일본 야구계에서도 185cm 이상의 유격수는 찾기 힘들다. 키가 큰 동시에 수비 중심이 높아 포구 후 송구로 이어지는 동작이 늦어 순발력이 뒤떨어진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학주는 학창 시절 "키가 큰 데도 순발력이 뛰어나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던 유망주다. 지난 12일 송파구 신천동에 위치한 헤렌 스포츠 클리닉서 만난 이학주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의 목표를 이야기했다. 갓 대학 수학능력 시험을 마치고 파마를 한 예비 새내기처럼 멋을 낸 이학주는 또래 선수들의 재기발랄함을 연상시키며 절로 웃음을 자아냈다.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보다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훗날 좋은 선수가 되고 싶다"라며 바람을 이야기 한 그의 미소는 더욱 밝아 보였다. 스피드는 뒤지고 싶지 않다 컵스가 이학주에 매력을 느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의 빠른 발에 있었다. 100m를 11초 F에 주파하는 빠른 발을 지닌 우투좌타 이학주는 홈플레이트서 1루까지 도달하는 최고 기록을 묻자 놀랄만한 수치를 이야기했다. "황금사자기를 치르고 있었을 때 기록을 쟀는데 코치님께서 3.5초가 나왔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그 때는 이미 어깨가 열리고 발이 1루를 향한 상태에서 나온 기록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스탠스를 잡고 나온 기록은 3.8초 정도였습니다" 빠른 발로 정평이 난 '안타 제조기' 스즈키 이치로(36. 시애틀)가 발이 1루로 향한 상태서 3.6초를 기록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학주의 스피드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지난해 폴 위버 컵스 태평양 지역 스카우트 겸 짐 헨드리 단장 특별 보좌역이 주자로써의 이학주를 최상급으로 평가한 이야기가 흰소리가 아님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뒤이어 이학주가 던진 말은 '아직 젊은 선수구나'라는 생각을 자아내며 저절로 웃음 짓게 했다. "우리 팀 1번 타자가 홈에서 1루까지 3.6초에 끊거든요. 그것도 스탠스를 확실하게 잡은 상태에서 말입니다. 1번 타자로 성공하고 싶은 만큼 꼭 스피드 면에서 그 친구를 이기고 싶다는 생각 뿐입니다" 동양인 유격수 편견, 내가 없애고 싶다 2008년은 한국 야구가 남자 단체 구기 종목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 쾌거를 일궈낸 한 해다. 올림픽에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학주는 "현지에서도 한국 야구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덕분에 저에 대한 현지의 기대도 조금 더 높아진 것 같구요. 하지만 얼마 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만큼 무리하지 않고 여유 있게 제가 바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싶습니다"라며 짐짓 여유있는 표정을 지었다. 컵스에서는 이학주를 미래의 1번 타자 감으로 일찌감치 점찍은 바 있다. 팔꿈치 수술에 관련해 묻자 이학주는 "투구 때나 송구 때나 힘을 주고 빠르게 던지고자 노력하는 편이었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검진을 받으니 팔꿈치 바깥쪽 인대가 많이 손상되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이른 시기에 일찌감치 수술을 단행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재활도 잘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학주의 발언은 그가 얼마나 긍정적인 선수인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이치로, 마쓰이 히데키(35. 뉴욕 양키스) 등 메이저리그 진출 후 제 몫을 해낸 동양인 외야수에 비해 내야수, 특히 유격수는 확실한 실력을 보이지 못했다.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일조한 이구치 타다히토(36. 전 샌디에이고)나 이와무라 아키노리(30. 탬파베이) 등을 성공한 케이스로 꼽을 수 있지만 그들은 유격수가 아니었다. 93마일(149km)의 빠른 송구를 자랑하던 유격수 마쓰이 가즈오(33. 휴스턴)는 포구 후 송구로 이어지는 동작에서 약점을 노출하며 졸지에 '어깨가 약한 내야수'로 전락하는 등 뉴욕 메츠 시절 '저평가'의 정점을 달렸다. "수비 면에서는 나름대로 자신있어요. 코칭스태프들도 긍정적인 말씀을 하시면서 격려해주십니다. 아직 영어에 능통하지 못해서 팀 전략을 100% 이해하거나 동료들과도 더욱 친해지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열심히 하면서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훗날 성공한 동양인 유격수가 되고 싶습니다. 정수민(부산고 졸업예정), 하재훈(마산 용마고 졸업예정)등 동기생들 보다 영어 실력이 취약한 만큼 일단 영어부터 능통하게 구사해야죠.(웃음)" 유격수 경쟁자? 다들 친한 사이!! 유격수 대어들 중 가장 먼저 진로를 확정지은 이학주였지만 그에게도 아쉬움은 남아 있었다. 유일하게 청소년 대표팀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충암고 1학년 시절부터 주전 유격수로 나섰던 그였기에 더욱 아쉬웠던 모양이다. "사실 2학년 때 대만에서 열렸던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에 참가할 뻔 했었는데 (안)치홍이가 뽑혔더라구요. 지난해에는 일찌감치 미국행을 결정지었고 저 빼고는 다들 대표팀에 뽑혔더라구요. 개인적으로는 아쉽기도 했지만 아버지께서 '더 큰 무대에서 조금 더 일찍 뛰는 게 낫다'라고 하셨습니다" '임팩트 시 힘을 모으는 능력이 다소 떨어진 것 같았다'라는 말에 "1번 타자였던 만큼 장타를 의식하기보다 밀어치는 타격을 주로 구사했을 뿐이다"라고 이야기 한 이학주는 함께 고교 야구 무대를 누볐던 라이벌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말 속에는 친구에 대한 애정이 물씬 배어나왔다. "다들 (안)치홍이가 장타력에서 우위를 갖췄다고 하시던데 배팅 파워는 (오)지환이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힘으로는 오지환을 이기기가 힘들어요. (김)상수는 수비력이나 주루 능력이 좋은 선수입니다. (허)경민이는 수비를 참 예쁘게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선수구요. 라이벌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사실 다들 친한 친구들입니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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