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들의 첫 병역 특례가 이뤄진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이나 예상을 뒤엎고 4강 위업을 달성한 2006년 제 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등 영광의 자리에 함께 했던 박찬호(36. 필라델피아)가 제2회 WBC 불참을 선언했다. 1회 대회에 이어 재차 지휘봉을 잡게 된 김인식 한화 감독은 박찬호에게 "아시아 예선이라도 뛰어줄 수 없는가"라며 의사를 타진했으나 박찬호는 이미 지난 11월 "2년 이상의 다년 계약이 아닌 1년 계약이라면 참가가 어려울 것 같다. 선발진 경쟁 등을 펼쳐야 하기 때문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시즌 45경기에 출장해 2할4푼8리 8홈런 27타점에 그치는 부진으로 인해 팀 내 입지가 좁아진 이승엽(33. 요미우리)이 참가에 난색을 표한 데 이어 우여곡절 끝에 이적 시장의 미아가 되는 위기를 벗어난 김동주(33. 두산) 등 '대표팀의 터줏대감'들이 잇달아 불참 의사를 밝혔다. 경험 많은 베테랑의 결장은 어찌보면 한국 대표팀에 커다란 위기와도 같다. 그러나 이는 도리어 국내 리그의 주축으로 우뚝 선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미 야구 팬들은 지난해 8월 베이징 올림픽서 젊은 선수들의 활약을 눈으로 지켜보며 찬란한 금빛 퍼레이드를 만끽했다. 8월 23일 쿠바와의 결승전서 8⅓이닝 5피안타 2볼넷 6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한 좌완 류현진(22. 한화)는 물론 새로운 일본 킬러로 우뚝 선 김광현(21. SK)는 새로운 '국민 원투펀치'가 되었다. '쌕쌕이' 이용규(24. KIA)는 9경기서 4할8푼1리 4타점 출루율 5할을 기록하며 대회 최고의 리드 오프로 활약했다. 대회 직전 부진으로 논란을 사기도 했던 '4번 타자' 이대호(27. 롯데)는 3할6푼 3홈런 10타점으로 맹위를 떨쳤고 일본전 역전 결승타의 주인공 김현수(21. 두산) 또한 3할7푼 4타점을 기록하며 9전 전승 우승에 기여했다. 이들은 모두 해외파가 아닌, 국내 야구계가 발굴한 보물같은 선수들이다. 타력보다 투수력에 의존한 감이 없지 않았던 1회 대회 당시에 비해 3년이 지난 현재 한국 야구는 많은 것이 변했다. 어느새 한 베이스를 더 가는 '발야구'가 한국 야구의 키워드 중 하나가 되었고 젊고 유망한 투수들이 가세하며 세대 교체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일본 야구가 베이징 올림픽 노메달 수모에도 불구, '강호'로 평가받는 이유는 대체자를 거리낌없이 내세울 수 있는 탄탄한 자국 리그를 갖췄기 때문이다. 짧지 않은 공백기를 가졌던 김병현(30)이나 추신수(27. 클리블랜드), 임창용(33. 야쿠르트)을 제외하고 전원 '국내파'로 구성될 가능성이 커진 WBC 대표팀이지만 이는 한국 프로야구의 힘을 가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경제력을 판별하는 가장 큰 기준이 내수 시장인 것과 같이 아시아에서 한 나라의 야구 수준을 판별하는 기준은 탄탄한 자국 리그를 갖췄는 지의 여부다. 다시 돛을 펼치게 된 '김인식 호'가 국내 리그를 주름잡는 스타 플레이어를 앞세워 또 한 번의 쾌거를 이룩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farinelli@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