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는 왜 울면서 떠나야 했을까
OSEN 기자
발행 2009.01.14 08: 40

[OSEN=김대호 객원기자] 박찬호(36.필라델피아)가 눈물을 머금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가와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13일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박찬호는 지금까지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던 자신만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박찬호는 왜 당당함 대신 나약한 인간의 표정으로 고국 팬들 앞에서 눈물을 흘려야만 했을까. 박찬호가 현재 처한 위치는 '벼랑 끝에 몰려 있는' 형국이다. 1994년 처음 미국 땅을 밟은 이후 최대 고비라 할 만하다. 선발 복귀라는 '지상과제'를 해결해지 못하면 선수생활 자체를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박찬호가 친정팀 LA 다저스를 버리고 동부의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날아간 것은 선발에 대한 집념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도 선발에서 탈락하면 사실상 선발 꿈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필라델피아와의 계약기간은 단 1년이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는 뜻이다. 루벤 아마로 주니어 필라델피아 단장은 1월7일 박찬호 입단식에서 "우리는 선발과 중간 모두 가능한 투수를 영입했다”면서 “박찬호에게 공정한 5선발 경쟁을 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이 얘기는 선발, 불펜 아무 것도 결정된 사항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찬호는 2월 중순 플로리다주 클리어워터에서 치러지는 필라델피아 스프링캠프부터 피말리는 5선발 경쟁을 벌여야 한다. 박찬호의 경쟁상대는 모두 25세 미만의 '영건'들이다. J A 햅, 카일 켄드릭, 카를로스 카라스코 등 3명이다. 켄드릭은 메이저리그 3년차로서 2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올리며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은 선수다. 햅과 카라스코는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유망주들이다. 박찬호가 이들 3명을 따돌리고 5선발을 차지하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5선발은 젊은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5선발 자리는 때론 불펜과 선발을 오가야 하기 때문에 젊은 유망주들의 테스트로 많이 사용된다. 박찬호 같은 노장투수들로선 웬만큼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5선발을 차지하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필라델피아는 4선발까진 일찌감치 결정돼 있다. 에이스 콜 해멀스를 비롯해 브렛 마이어스, 조 블랜턴, 제이미 모이어로 짜여진 4선발은 갑작스런 부상이 없는 한 요지부동이다. 박찬호의 또 하나 꿈은 노모 히데오의 아시아 선수 최다승 기록을 깨는 것이다. 박찬호는 통산 117승 92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4.34를 올리고 있다. 123승의 노모에 6승 뒤져 있다. 선발로 고정출격하면 별 것 아닌 승수지만 불펜투수로선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박찬호는 "반드시 노모의 기록을 깬 뒤 은퇴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목표를 이루자면 선발진입이 1차 관문이다. 만일 선발진입에 실패할 경우 박찬호는 1년 뒤 다시 다른 팀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러나 박찬호의 나이 등 여러 여건상 선발자리를 차지하긴 난망하다.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박찬호가 눈물을 보이면서까지 김인식 감독과 국민들의 여망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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