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는가’와 ‘마리화나’ 지난해부터 유난히 문화계는 조선 세종의 시대를 주목했다. KBS 드라마 ‘대왕 세종’을 비롯해 영화 ‘신기전’, 연극 ‘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는가’, ‘마리화나’ 등이 모두 위대한 조선의 세종시대를 주목한 대중문화작품들이다. 이 안에 두 편의 연극이 있다. 이 연극들은 조선 세종 시대의 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무대에 올렸다. 세종의 훈민정음 반포를 앞둔 7일간의 궁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연쇄 살인사건을 담은 연극 ‘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는가’와 세종시대 궁 안에서 벌어진 세자빈의 과감한 밤 문화를 무대에 올린 연극 ‘마리화나’ 다. 지난해 정동극장에 올랐던 ‘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는가’가 올해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다시 올랐다. 이정명의 소설 ‘뿌리 싶은 나무’를 연극으로 만든 작품으로 연출은 박승걸이 맡았다. 박승걸 연출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가는 극 전개가 꼼꼼하고 세심하다. 세종 25년, 경복궁 젊은 집현전 학사들이 의문 속에 죽음을 당한다. 오직 힌트는 마방진 그림, 그 실마리로부터 시신들의 팔에 새겨진 문신과 학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던 금서의 비밀을 풀어간다. 런닝 타임 2시간 동안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극 전개는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켰다. ‘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는가’는 조선 세종 시대에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세력, 대제학 최만리의 배후 세력 추적과 강대국 중국의 눈치를 봐야했던 약소국의 설움까지 담아냈다. 게다가 스쳐지나가듯 등장하는 대왕 세종은 짧은 출연으로 진취적이고 위엄 있는 인물로 자연스레 묘사됐다. 극을 전개하는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대왕 세종은 극을 전개하는 핵심인물은 아니다. 오직, 세종시대 고증 속에 남은 메시지와 살인사건이 중심이다. 이 연극은 조선세종시대를 핵심으로 담았다. 그 연결고리에 집현전 학사들의 연쇄살인사건과 한글창제배경, 세종의 위대함, 약소국의 비애, 악역을 감수했던 역사적인 인물 최만리를 대변하기까지 한다. 박승걸 연출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흥미진진한 상상력으로 출발한 작품”이라며 “그저 즐겁게 보려는 마음으로 오면 된다. 웃음이 많은 객석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너무 많은 위대한 소재들을 담고 있어 그냥 즐기기는 버거운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마리화나’는 어떠한가. ‘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는가’가 조선세종시대 정사(正史)에 관해 극이 전개됐다면 세종시대 궁에서 비밀리에 벌어지는 밤 문화는 어땠을까. 연극 ‘마리화나’는 세종의 대담한 세자빈을 도마 위에 올렸다. 밤마다 요상한 물건, 절구공이를 들고 궁녀들과 요상한 짓거리에 꼬리가 잡힌 세자빈 봉 씨의 레즈비언 행각을 포착했다. ‘마리화나’는 배우 오달수와 서주희의 등장만으로도 주목받은 연극이었다. 세자와 내관이 ‘몽혼초’(마리화나)를 나눠 피우고, 세자빈과 궁녀가 ‘카마수트라’를 보며 밤마다 아슬아슬한 성애를 묘사한다. 이 작품 또한 대왕세종의 며느리였던 봉 씨가 동성애로 폐출당한 실제사건을 담았다. 역사적으로 조선왕조실록(세종 18년)의 기록된 사실을 바탕으로 고선웅 연출자의 상상력이 발휘됐다. 정력 넘치는 세자빈 봉 씨의 성욕을 채우기 위한 뒷거래(?)를 비롯해 억압당한 욕망이 은밀히 피어오른 왕세자와와 내관, 궁녀 등 일곱 남녀의 관계를 묘하게 풀어놨다. ‘마리화나’는 세자빈의 두번째 부인 봉 씨의 폐빈 사건만을 역사적 기록에 의존했다. 핵심이 되는 사실의 기록이 많지 않은 덕분(?)에 극이 전개되면서 얽히고 설킨 복잡한 구조에도 부담없이 진행된다. 게다가 고선웅 연출만의 말장난 섞인 대사들과 재치 있는 오달수-서주희의 동작묘사는 웃음을 자아낸다. 연출이 재주부린 포장으로 연극은 역사서의 성문화를 소재로 다뤘지만 ‘에로티시즘’이 강하거나 시대 전반을 ‘저속하게’ 표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등장하지도 않는 세종의 이미지는 조금 달라졌다. 이 연극은 위대한 정치적 업적을 남긴 대왕 세종을 색안경 끼고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만들었다. 세종은 18남 4녀의 자식을 뒀다. 그 많은 며느리들과 궁을 지키던 환관이나 후궁, 궁녀들은 개인의 성적인 욕구를 해소할 수 없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대변하는 인물이 세자빈 봉 씨다. 한 가지 재미를 더하는 것은 ‘마리화나’에서 놓친 인물이 있다는 것. 대왕 세종이 궁에서 쫓아낸 세자의 첫 번째 부인이다. 첫 번째 세자빈 김 씨는 세자에게 먹일 ‘비아그라’를 궁 안에서 직접 제조하는 대담무쌍한 행각을 벌였다고 알려졌다. '마리화나'에 세자빈 김 씨도 더했다면 세종시대 궁 안의 이야기가 더욱 흥미롭지 않았을까. 그저 태평성대라 여겨졌던 세종 시대의 베일은 벗기면 벗길수록 흥미진진하다. jin@osen.co.kr 연극 ‘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는가’와 ‘마리화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