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군이라도 진 경기에 대해 분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박종훈 두산 베어스 2군 감독이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못한 2군 선수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지난 19일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베어스 필드서 만난 박 감독은 프로야구 역사상 첫 신인왕(1983년)에 빛나는 베어스의 '원조' 스타 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지난 2007년부터 데뷔 팀의 까마득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 두산에서의 2군 감독 생활 3년 째를 맞게 된 박 감독은 "지난 시즌이 두산에서의 2번째 해였다. 두산은 이미 내가 오기 전 1,2군 시스템이 확실히 구축된 팀이라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팀을 이끌었던 듯 싶다"라며 겸손하게 이야기한 뒤 "1군에서의 경쟁 체제가 확립된 것이 2군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다"라며 두산 2군을 자가진단했다. 일본 미야자키에서 진행 중인 전지 훈련에 참가하지 못한 선수들은 거의 매일 아침 잠실구장에 소집한 뒤 이천으로 이동해 오후 4시 경까지 훈련에 매진한다. 스포트라이트서 벗어 난 환경에서 훈련한다는 점은 선수들에게 자괴감을 안겨줄 수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박 감독의 대처법이 궁금했다. "선수들의 표정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선수들을 감싸기보다 오히려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전지 훈련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점은 개개인에게 아픔과 좌절로 다가오지만 그들은 절박한 선수들이다. 따뜻한 말로 그들을 감싸 줄 경우 마음 속에 나약함이 싹 틀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승부욕을 고취시키고자 한다. 특히 김경문 감독께서 일정 도중 1~2명의 교체 계획을 밝힌 만큼 중도하차하는 선수가 있다면 그에 대해서도 홍역을 치르게 될 것이다" 1983년 전신 OB에 입단하자마자 타율 3할1푼2리를 기록하는 동시에 최다안타 타이틀까지 휩쓸면서 신인왕에 뽑혔던 박 감독은 경기 도중 몸에 맞는 볼로 인해 일찍 은퇴를 택했다. 탁월한 중견수 수비에 정확한 타격으로 명성을 떨쳤던 스타 플레이어였기에 그의 은퇴는 팬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가져다 주었다. 현역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자 박 감독은 "부상도 있었기에 적절한 때 은퇴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은퇴 당시에는 선수로써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곧바로 미국 유학을 택했고 바삐 움직이고 배우다보니 은퇴에 대한 아쉬움은 쉽게 떨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박 감독의 7시즌 통산 성적은 2할9푼 35홈런 431타점 170도루다. 화제를 다시 선수들에게로 돌려 2차 1순위 유격수 허경민(19. 광주일고 졸업 예정)을 비롯한 신인들이 국내에 잔류하고 있는 데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우완 성영훈(19. 덕수고 졸업예정)과 좌완 유희관(23. 중앙대 졸업예정), 외야수 정수빈(19. 유신고 졸업예정)을 제외한 나머지 신인들은 모두 잠실과 이천을 오가며 국내 훈련에 주력하고 있다. "학창 시절 다들 '야구 잘한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입단한 선수들이지만 아직 1군에서 즉시 뛰기에는 부족하다는 객관적인 평가일 것이다. 다른 팀에도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두산 뿐만이 아닌 전체적인 선수층이 이전에 비해 두꺼워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야수 쪽에서는 과거에 비해 즉시 전력감을 8개 구단 전체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전지훈련에 불참한다고 해도 자신에게 할당된 훈련량 이상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찾을 수 있겠지만 어디서 비시즌 훈련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훈련에 적응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오랫동안 선수들을 지도해왔던 박 감독의 기억에 가장 인상 깊게 남는 선수를 묻자 그는 LG 시절 지도했던 허문회(현 LG 2군 타격코치)의 이름을 꺼냈다. 박 감독은 허문회와의 일화에 대해 자신의 '지도관' 정립에 도움을 주었다며 제자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타격코치 부임 초기였을 때 허문회가 내게 '왜 코치님은 선수들을 편애하십니까'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선수들이 봤을 때 내가 어느 한 선수에게 집중적으로 지도하는 듯한 인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우리 정서 상 선수가 코칭스태프에 먼저 항의하는 경우는 찾기 힘든데 허문회는 거리낌없이 그러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현명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문회의 이야기 덕분에 그 이후에는 선수들을 더욱 공평하게 바라보고자 노력했다. 당시 나도 젊은 타격코치였는데 그의 말이 너무도 인상적이라 그 즉시 사과하며 이후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던 기억이 난다. 지도하다 다른 선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쳐지는 선수가 있더라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지도가 필요한 것 같다. 코치진에도 이를 강조하고자 노력한다" 야구 팬들 가운데서는 2군 팀 성적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선수 성장'과 '2군 성적'에 관련해 양분법적 입장인 '우문'을 던지자 박 감독은 '현답'을 내놓았다. "부단한 연습과 최대한 많은 경기 기회, 그리고 선수들 개개인의 승부욕. 이것이 2군에서 선수들의 성장에 큰 역할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군에 비해 많은 경기 기회를 갖기 힘든 것이 2군의 현실이다. 아무리 좋은 씨앗을 심더라도 볕이 약하면 튼실한 열매가 자라날 수 없지 않은가" "2군 경기서라도 선수들은 패했을 때 안타까워하고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선수 성장에만 치중하는 지도보다 한 팀의 구성원이라는 생각 아래 팀의 패배에 분노할 줄 알며 분한 마음을 가지고 더 많은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두산 2군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야기를 끝맺으면서 박 감독은 지난해 타격왕(3할5푼7리) 김현수(21)의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감에 관련한 자신의 지론을 밝혔다. 박 감독의 이야기에는 선수들이 부단한 연습과 노력을 통해 더욱 뜻깊은 성적표를 받을 수 있길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입단 후 1년 간 2군서 매일 죽을 만큼 연습한 김현수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다. (김)현수는 입단 첫 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연습 목표량을 채우며 기량을 키운 선수다. 죽을 만큼 연습해야 상대를 무릎 꿇게 할 수 있는 진정한 자신감이 나오는 법이다" "타자가 어떤 상황에서든지 타석에 나가고 싶어하는 것, 투수가 어떤 위기서라도 빨리 마운드에 오르고 싶어하는 것이 진정한 자신감이다. 말로만 '자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리그 최고 에이스를 상대하게 되더라도 빨리 타석에 나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진짜 자신감이다. 자연스러운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farinelli@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