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에 들어가봐야 알 수 있다".
연일 호투를 펼치고 있는 '좌완 파이어볼러' 전병두(25, SK)에 대한 냉정한 평가다.
일본 고지 스프링캠프에서 담금질에 한창인 전병두는 지난 23일 첫 홍백전에서 선발 등판, 3이닝 3탈삼진 포함 무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를 펼쳤다. 이어 3일 뒤인 26일에는 4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7이닝 동안 1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
주축 선수들이 빠진 상태지만 지난 21일부터 실전과 다름없는 강도높은 홍백전을 치르고 있는 SK 캠프 분위기라는 점에서 전병두의 두 경기 연속 무실점 소식은 관심을 집중시켰다. 더구나 1, 2군의 격차가 가장 적다는 SK 타자들을 상대로 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점수가 매겨졌다.
이미 김성근 감독을 비롯한 SK 코칭스태프는 스프링캠프 전부터 전병두의 올해 활약을 어느 정도 기대하는 눈치다. 지난해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김 감독은 "전병두를 엔트리에 넣고 싶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시리즈 엔트리에는 포함시켰다. 코칭스태프도 캠프에 가기 전부터 "지금 이대로 2009년이 시작된다면 올해 대박은 전병두가 될 것이다. 사고를 칠 것 같다"는 일치된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런 칭찬의 말끝에는 하나같이 똑같은 '단서'가 달렸다. "자기가 잘해야지뭐."
선수단과 함께 캠프에 가 있는 SK 전력분석팀 김정준 과장은 최근 OSEN과의 전화통화에서 연일 호투를 펼치는 전병두에 대해 기대감을 보이면서도 조심스런 입장을 내비쳤다.
김 과장은 "현재의 전병두는 김광현과 함께 가장 좋다. 분명 감독님의 의중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고 긍정적으로 말했지만 "야구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지금 저렇게 잘던지는 병두지만 불펜과 실전 경기와는 분명 다르다. 시즌에 들어가봐야 안다"고 강조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계속 유망주에 그쳤던 것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 과장은 "운도 따라야 한다"며 "예를 들어 상대팀의 타순 같은 것이다. 시즌 초반 몇 경기에서 잘던질 경우 이후에는 자신감을 가지고 던질 수 있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분명한 것은 'SK 전병두'의 올해는 다르며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은 다 갖췄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우선 올해로 프로 19년차가 되는 박경완(37)이라는 국내 최고의 포수가 있다는 것이다.
전병두는 지난해 5월 7일 잠실에서 열린 LG전에 선발 등판했다. 사흘전인 4일 KIA와 2 대 3 트레이드로 SK에 합류한 뒤 처음 갖는 SK 데뷔전이었다. 김성근 감독으로부터 투구폼 교정이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이른 등판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5이닝 무실점. 7개의 볼넷과 1개의 보크를 기록하면서도 1피안타 4탈삼진으로 성공적인 SK 데뷔전을 가졌다. 최고 구속은 147km까지 나왔고 총 98개의 투구수 중 스트라이크와 볼넷 비율은 1 대 1이었다.
박경완은 경기 초반 전병두가 흔들리자 "책임은 내가 진다. 마음 놓고 던져라"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당시 경기 후 김성근 감독도 "역시 박경완이다. 투수가 포수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줬다"고 박경완의 리드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하나의 조건은 SK가 자랑하는 강력한 '필승불펜'이다. 이는 내가 아니라도 뒤에 나올 투수가 막아줄 것이라는 심리적인 안정을 줄 수 있다. 위기에 몰렸을 때나 지고 있을 때도 항상 뒤에서 막아주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다. 전병두는 이미 지난해 LG전에서 이를 경험했다. 6-0으로 앞서긴 했지만 6회 연속 볼넷을 허용한 후 교체됐다. 그러나 윤길현과 정우람이 무실점으로 후속타자를 처리해 실점없이 이닝을 마쳤다. 강력한 SK의 중간계투진은 전병두의 투구를 돋보이게 할 뿐 아니라 자신감까지 심어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준다.
김 과장은 마지막으로 전병두를 지도할 수 있는 SK의 연습 환경을 꼽았다. 투수 조련에 일가견이 있는 김 감독을 비롯해 일본프로야구 신인왕 출신 가토 투수 코치가 버티고 있다. 가토 코치는 선수시절 노히트노런을 기록했고 요미우리 에이스로도 활약했다. 통산 141승을 거뒀다. 계형철 2군 감독과 김상진, 최일언 투수출신 코치들도 포함된다.
여기에 팀 분위기를 들 수 있다. 서로가 넘어서야 하는 경쟁 상대이면서도 항상 웃으며 서로 다독여 주는 덕아웃 분위기는 SK만의 독특한 문화라 할 수 있다. 선후배간의 깍듯한 예의가 존재하는 속에서도 격의 없이 주고 받는 대화로도 이를 알 수 있다. 얼마전 캠프 첫날 다쳐 귀국해야만 했던 '이적생' 손지환도 "선수들이 걱정을 많이 해줘 너무 고마웠다. 다른 팀에서 겪지 못한 독특한 경험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김정준 과장은 "다른 구단과 비교가 아니다. 이런 조건은 SK라는 팀이 병두에게 줄 수 있는 느낌"이라며 "전병두가 SK에서 투구를 하는데 나쁜 요소는 분명 없다"고 말했다.
결국 최고포수, 필승불펜, 훈련환경, 팀분위기라는 4가지 멍석이 깔려있는 만큼 문제는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다"는 최후의 과제가 전병두에게 남은 셈이다. 그런 점에서 김 감독이 최근 전병두에 대해 "볼보다는 표정이 밝아졌다"고 말한 것도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이를 뛰어넘을 경우 전병두는 만년 유망주 생활을 청산하고 '좌완 파이어볼러'의 위용을 비로소 터트릴 것이 분명하다. 올해 최고 이슈 메이커로 전병두가 부상할지 2009시즌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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