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여성의 신데렐라 스토리, 연극 ‘리타 길들이기’와 뮤지컬 ‘오 마이 페어 레이디’ [OSEN=박희진] 1994년 국내에 초연된 바 있는 연극 ‘리타 길들이기(Educating Riat)’(연출 박계배)가 지난해 ‘연극열전’ 세 번째 작품으로 무대에 올랐다. 올해 앵콜공연으로 다시 진행된 ‘리타 길들이기’는 ‘프랭크’역에 윤주상과 ‘리타’역에 최화정을 비롯해 박계배 연출의 합류로 15년 전 ‘리타 길들이기’의 재현을 시도했다. ‘리타 길들이기’는 영국 극작가 윌리 러셀(WillyvRussell)의 1980년 ‘셜리 발렌타인’을 각색했다. 40대 중년 여성이 그리스 여행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에서 ‘여성의 자아 찾기’라는 주제를 ‘리타 길들이기’에 담아낸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배움에 갈망하던 결혼 2년차 28살의 주부이자 미용사인 리타는 “뭔가 달라지고 싶다. 달라지려면 속부터 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 한다. 순수함과 새로운 삶의 열정을 갖고 있는 ‘리타’는 자아발견에 눈을 뜬다. ‘리타’가 길들여지는 과정은 현대판 신데레라를 무대 위에 올렸던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의 ‘일라이자 두리틀’을 기억케 한다. 이 두 작품은 ‘피그말리온’ 신화를 바탕으로 공통된 주제를 무대에 올려 서로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는 1912년 런던, 길거리에서 꽃을 파는 하층 계급의 여성 ‘일라이자 두리틀’을 언어학자 ‘하긴스’ 교수가 개인 교습을 통해 귀부인으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을 그렸다. 지난해 9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이 뮤지컬에서 언어학자 하긴스 교수 역에 이형철이 분하고 길거리 꽃 파는 아가씨 일라이자는 김소현과 임혜영이 더블캐스트로 출연했다. 일라이자가 저급한 하층민의 언어를 버리고 영국 상류사회의 고풍스런 언어를 배워 사교계 신데렐라가 된다. 일라이자가 쓰는 저급한 언어들은 우리말의 비속어, ‘겁나’ ‘뽀리다’ ‘작살’ 등을 적절히 섞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며 극을 전개했다. 꽃 파는 아가씨 김소현은 허름하고 낡은 옷차림과 거친 말투의 일라이자에서 화려하고 웅장한 무도회장에 아름다운 일라이자로 변해가는 모습까지 사랑스럽고 애교스럽게 소화해냈다. 일라이자의 변화 속에서 볼거리 풍성하고 화려한 뮤지컬 무대로 기억된다. 연극 ‘리타 길들이기’는 어땠을까? 리타를 가르치는 크랭크로 분한 윤주상의 완벽한 대사전달과 능숙한 연기는 고뇌하는 지식인과 술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인, 애정 가득한 스승의 모습의 프랭크 교수를 그대로 보여줬다. 1991년 신인배우로 처음 만난 리타로 다시 돌아온 최화정은 다듬어지지 않은 천진난만함에서 성숙한 세련미까지 자연스레 소화가 가능한 배우였다. 무엇보다 돋보인 것은 변해가는 옷차림과 말투, 작은 소품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들이다. 창부를 연상케 하는 레이스 달린 빨간 원피스를 입고 거친 입담으로 야한 표지의 ‘밤 고양이의 외출’이라는 책을 프랭크 교수에게 건네는 리타의 등장을 시작으로 얌전한 플레어스커트에 가디건, 검은 뿔테 안경까지 8분마다 한번 씩 바뀌는 14벌의 리타의상은 지적성숙을 외치며 변해가는 리타의 모습을 화려하게 보여준다. 이 두 작품의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신데렐라로 변해가는 주인공의 이미지 변신 뿐 아니라 위엄 있던 남자들이 속물로 변해간다. ‘리타 길들이기’에서 리타는 자아를 찾아가려는 아내를 구속하고 공부를 더 이상 할 수 없도록 책을 불태우는 남편이 대사 속에 등장한다. 리타의 변화 속에 남편과의 단절은 심해지고 결국 헤어짐을 결심한다. ‘대학물’을 먹고 문학이 무엇인지 알아가게 되는 리타에게 프랭크 교수는 “리타의 본모습이 더 좋다”고 고함을 지른다. 프랭크 교수 역시, 가엽게 여겨지던 리타의 변화에 질투의 속물이 된 건 아닌지 싶다. 리타만이 아니다. “여자를 가까이하면 질투의 화신이 되고 이기적인 폭군이 된다”며 확고한 독신을 밝혔던 하긴스 교수는 아름답게 변한 일라이자와 사랑에 빠진다. ‘리타 길들이기’의 프랑크 교수와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변해버린 일라이자를 두려워하며 예전 그녀의 모습을 아쉬워한다. 그리고 자신의 속내는 뒤로 감춘 채 속물이 되어간다. 연극 ‘리타 길들이기’와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는 잊고 있던 자신의 소중함을 찾고 주체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하는 여성의 신데렐라 스토리다. 신데렐라를 꿈꾸는 모든 여성들의 화려하고 기분 좋은 무대와의 만남은 기존의 열등한 위치에 있었던 여성들에게 새로운 정체성 확립의 희망을 전한다. jin@osen.co.kr 연극 ‘리타 길들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