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나’…연극이 해방구가 될 수 있을까?
OSEN 기자
발행 2009.02.17 08: 56

[리뷰] 연극 ‘황야의 물고기’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권총을 든 보안관 존이 등장한다. 총잡이들 틈에 조용할 날 없는 이 마을은 보안관 존이 지킨다. 연극은 한편의 서부영화를 연상케 한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마을을 배경으로 그린 ‘황야의 물고기’는 일탈을 꿈꾸는 온라인 카페 비밀 모임이 만든 ‘서부시대’의 가상공간이 그 무대다. 연극은 설정을 통해 '나'를 벗어나기 위한 사람들끼리의 채팅 공간에서 비롯된다. 낙원을 꿈꾸는 현대인들이 세상을 벗어난 가상공간을 설정한다. 그 안에서 함께 할수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청하고 자신이 원하는, 자신이 꿈꾸는 '또 다른 나'를 연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또 다른 나'로 살아가길 기대한다. 연극은 현실을 도피하려는 이들의 역할극이다. 자신이 설정한 '또 다른 나'를 연기하며 현실을 벗어나려는 고통의 몸짓이기도 하다. ‘서부시대’ 카페를 찾은 손님들은 서부 시대 복장을 하고, 주어진 대본대로 말하면서 ‘연극’을 한다. 이곳을 찾는 회원들은 어린 주부부터 전당포 아저씨, 고물상 주인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이들이 ‘서부시대 연극’을 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오직 자신을 벗어나, 현실을 잊기 위해서 이 연극을 즐기는 것이다. 연극은 ‘서부시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넘어서진 못한다. ‘서부시대’ 무질서 속에서 모든 인간관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보안관 존은 카페 월세 5만원을 내지 못해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철저히 무시당하며 공격을 받는 불쌍한 연극장이의 모습으로 희화됐다. 이들의 ‘서부연극’은 후반으로 갈수록 극중 인물간의 갈등과 서로의 오해가 드러나면서 처절한 스토리로 변해간다. 보안관 존은 현실과 연극 사이에 혼란을 겪는다. '서부연극'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현실을 보지 못한다. 연극은 계속해서 보안관 존을 괴롭힌다. 현실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인집 아주머니의 계속되는 공격과 포악한 아내의 등장까지. 현실과 유난히 오버랩되는 보안관 존은 '서부극'에 빠져든 관객 마저도 안타깝다. 배역의 설정에 있어서도 모든 연기자들은 '서부극 놀이'가 끝나면 집으로 향하지만 보안관 존은 갈 곳이 없다. 놀이는 놀이일 뿐, 다들 자신의 현실을 잊지는 않았다. 보안관 존은 그것을 잊고 위험한 '환상'에 너무 빠져들었다. 보안관 존은 왜 자신을 버리고 '서부'를 택한 것일까? 돌아갈 의지가 보이지 않는 보안관 존의 현실이 가슴아프다. ‘서부시대’라는 연극을 통해 현실 속에 인간의 쓸쓸함을 표현했다. 이리저리 치여 사는 현실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서부극 놀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해방구 같은 기능을 한다. 연극에서 황야는 ‘현실도피구역’으로서 ‘서부시대’의 카페를 수단으로 정했다. 쓸쓸한 현대인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서부시대와 현실의 오버랩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이 연극의 매력이 아닐까. 매일매일 똑같은 지긋지긋한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는 것 또한 흥비롭다. 하지만 관객들이 그것을 즐기기에 너무도 짧은 시간에 그들의 삶은 현실과 부딪히게 된다. 잘 짜여진 시나리오와 중견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는 연극과 현실을 더욱 구분하기 어려워 재미를 더했다. 극 중 극에 빠져드는 재미를 충분히 제공한다. jin@osen.co.kr 연극 '황야의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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