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선고등학교 졸업 30주년을 바라보며… 창선고등학교를 졸업한지 벌써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2월의 끝자락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고 가슴 한 구석에서 무엇인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남해군 창선면이라는 작은 섬에서 자란 우리는 서로가 끈으로 이어져 있다. 형님, 누나, 동생들은 거의 대부분 알고, 아니 몰라도 얼굴이나 피부색만 보면 누구 동생이고 누구 부모인지 정도는 대부분 알고 있다. 친구란 무엇일까? 특히 고등학교 3년을 같이 보냈다는 것은 아마도 많은 추억을 함께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어른으로 자라는 과정까지도 함께 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철이 없었던 중학교 시절과 다르게 이성과 낭만과 감성을 고루 갖춘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들은 지금도 나의 머릿속에 많은 이야기 거리로 남아있다. 주간테스트, 동네 대항 체육대회, 자장면 내기 축구,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땡땡이, 감서리 하기, 학창서림, 중국집, 수산 만복당, 구멍빵집, 창훈이집 보루구장에서의 추억, 배밑창 아주머니, 참나무전에서 용준, 주동, 진철, 양석 등과 과자내기 공차기, 닭서리, 주복서리 등… 지금은 고향과 학교를 자주 찾지는 못하지만 매년 4월이면 선•후배가 만나서 우정의 한마당 잔치를 하면서 옛 추억을 이야기하곤 한다. 작아진 의자와 책상들, 사라진 학교 건물들과 새로 생긴 기숙사 등에서 추억을 찾아 헤매는 친구들의 모습을 바라볼 때면 知天命을 넘길 즈음에 추억의 한 자락을 붙들기 위하여 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아직까지도 살 날이 많고 할 일 또한 많다. 친구들 모두가 열심히 살아왔고 건강하게 살아가리라 믿는다. 친구를 만나고, 보고, 옛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보내는 하루가 즐거우리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이 미소를 인생의 마지막까지 가져가고 싶다. 창선이라는 작은 섬에서, 친구라는 공동체 속에서, 창선고등학교에서,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학창시절의 추억들은 내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대산골, 부윤, 대방산, 추섬, 왕호박나무, 죽방멸치, 창선대교, 남해 금산 등 가고 싶은 고향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좋다.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 즐기고 베풀면서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여 아웅다웅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새 나의 얼굴에 많아진 주름과 머리에 늘어나는 하얀 서리들로 세월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 옛날에 계셨던 선생님들은 모두 떠나고 선배나 후배들이 학교를 지키고 있다. 고향에 있는 나의 친구와 선•후배님들이 학교를 명문 사학으로 만들기 위하여 장학금도 모으고 기숙사도 세워 좋은 환경 속에서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그나마 자주 만나는 서울 친구들, 고맙고 감사하다. 서울, 부산, 마창, 진주, 창선 등 전국 각지에서 이런저런 모양으로 살고 있는 친구들과의 이번 2월 28일 만남이 기다려지고 이 만남이 영원한 추억으로 남으리라 생각된다. 고향을 지키고 전국 각지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들 이름을 지면상 일일이 거론하지 못함을 이해하길 바라고 또 머리가 썩 좋지 못하기 때문에 자주 만나는 친구들 이름도 종종 까먹고 있다는 사실도 이해하여 주길 바란다. 주님 안에서 남아있는 많은 세월을 의미 있고 뜻있게 산다면 근심, 걱정, 두려움은 떠난다. 친구의 가정과 사업장에 하나님의 축복이 영원하리라 믿는다. 친구들아, 보고 싶고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글 : 박주묵 베터콤 대표일꾼 창선고 21회 1979년 졸업] [OSEN=생활경제팀]osenlife@osen.co.kr 남해 창선고등학교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