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라는 말은 무의미하다".
23일 오후 1시 미야자키 휴가시 오쿠라가하마구장 선돔. 이날 휴가지역은 전날부터 비가 내렸다. 조범현 감독은 선수들이 지쳤다고 판단해 오후 1시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이른바 하프데이. 훈련량이 줄어서인지 선수들의 얼굴은 밝았다. 실내연습장인 선돔에서 타자들은 웃음꽃을 피우며 방망이를 돌렸다.
팀 최고선배 이종범도 포수 김상훈이 던져주는 볼을 때리기 시작했다. 짧고 빠른 스윙으로 날카로운 타구를 날렸다. 10여분 간의 타격을 마친 이종범은 토스배팅 장소로 옮겨 고친 타격폼을 가다듬었다. 이종범은 타격시 방망이 그립 위치를 오른 어깨앞쪽으로 내렸다. 최대한 짧은스윙을 하기 위해서다. 밝은 얼굴이었지만 신중하기도 했다.
오후 4시께 훈련을 마친 이종범은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에 "깔끔하게 면도를 해서 그렇다"며 활짝 웃었다. 이어 옆에 있는 황병일 타격코치를 의식한 듯 "지난 해에 비해 훈련량이 많아졌다. 황병일 타격코치의 주문이 많다"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표정을 지었다.
이런 이종범을 바라보는 코칭스태프의 시각은 어떨까. 이종범은 매년 은퇴 가능성이 거론되어 왔다. 지난 해 은퇴기로에 섰지만 본인이 선수생활 의욕을 보였고 구단도 재계약을 해주었다. 그러나 올해 역시 이종범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각은 선수생활을 계속 할 수 있는지에 쏠려있다.
우리나이로 40살을 맞이한 이종범의 주변 환경은 녹록한 형편이 아니다. 외야 경쟁률이 치열하다. 붙박이 이용규가 중견수로 자리잡고 있고 2년차 나지완이 우익수 주전을 확보했다. 남은 좌익수는 김원섭, 채종범이 노린다. 장성호가 좌익수로 나갈 수 있어 경쟁률을 높이고 있다. 갈수록 이종범의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
조범현 감독은 "훈련을 착실하게 소화하고 있다. 훈련량이 젊은 후배선수들처럼 많은 것은 아니지만 노장답게 스스로 잘 조절하고 있다"고 후한 평가했다. 아울러 "이종범 기용방식이 궁금할텐데 분명히 기회를 줄 것이다. 이종범이 개막부터 좋으면 무조건 주전으로 쓸 것이다"고 말했다.
황병일 타격코치는 "후배들과 잘 어울리고 조언도 잘 해주고 있다. 얼굴도 밝아서 보기 좋다. 팀 형편상 이종범이 주전은 쉽지는 않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데도 여전히 스피드를 갖고 있다. 예전의 다른 고참선수들과 달리 활용법은 많다. 내 바램이지만 지난 해 만큼만 해준다면 최상일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종범은 지난 해 110경기에 나서 타율 2할8푼4리, 1홈런, 38타점, 9도루를 기록했다. 최근의 부진을 깨끗하게 씻어낸 성적이었다. 우익수 뿐만 아니라 1루수까지 뛰면서 주축선수로 활약했다. 조범현 감독 역시 올해도 지난 해의 활용도만 보여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말한다.
이런 시각을 잘 알고 있는 듯 이종범은 "나에게 목표라는 말은 무의미하다. 우선 부상없이 스프링캠프를 끝내야 한다. 일단 부상이 없어 잘 보내는 것 같다. 페이스는 귀국해서 끌어올려도 문제 없을 듯 하다"고 밝혔다.
올해로 벌써 프로 17년 째. 산전수전을 겪은 그에게 구체적인 목표나 '선수생활을 언제까지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무의미했다. 하루 하루가 아쉬운 그는 현재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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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라가하마 실내연습장에서 워밍업을 하고 있는 이종범./KIA 타이거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