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뉴욕 안티고네’와 ‘아일랜드’ ‘안티고네(Antigone)’는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와 그의 어머니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비극적인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안티고네는 삼촌 크레온 왕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반역자로 선포된 오빠의 시신을 몰래 매장한다. 화가 난 크레온 왕은 안티고네에게 처형령을 내리고 지하 감옥에 가둔다. 거기서 안티고네는 목을 매 자살한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최근 연극계에 인간의 자유가 억압되는 현실을 다룬 두 편의 연극 소재로 활용돼 묵직한 내용을 담아냈다. 인간 ‘안티고네’를 통해 연극이 관객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연극 ‘아일랜드’(연출 임철형)는 무형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 사회를 포착했다. 불평등한 사회 시스템 틀 안에 갇혀 살아가는 두 명의 죄수가 극 중에 ‘안티고네’를 연기하며 인권문제에 대해 강한 의미를 부여했다. 현대인들의 ‘창살 없는 감옥’을 대변하는 이 연극은 극중극 형식을 빌어 '안티고네'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 위에 펼쳐 놨다. '아일랜드' 원작은 백인들로부터 멸시 받는 흑인들의 아픔을 리얼하게 표현해 감방과 죄수 등 인간의 극한 상황을 소재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정의, 진실 등을 표출시킨 작품이다. 2009년의 '아일랜드'는 미래의 어느 곳을 시점으로 '안티고네'의 인권문제를 현대적으로 풀어내 철저히 번안극으로 소개했다. 미래화된 '아일랜드'는 원작이 가진 감동을 전하기엔 부족했지만 '안티고네'가 지닌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전하기에 무리는 없었다. ‘안티고네’의 신념과 현대적인 메시지가 강하게 담겨있는 작품은 연극 ‘뉴욕 안티고네’(연출 이성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극작가 야누시 그워바츠키(Janusz Glowacki)의 원작 ‘뉴욕 안티고네’는 안티고네 스스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인간 존재의 파멸성과 세속적인 모순을 이야기한다. 20세기 뉴욕의 어느 공원에서 펼쳐진 비극을 놓고 세 명의 노숙자가 풀어낸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왕위를 놓고 싸우다 죽은 에테오클레스의 버려진 시신을 몰래 매장하는 데서 크레온 왕과 대립하게 된다. ‘뉴욕 안티고네’는 어땠을까? 뉴욕의 공원에서 노숙을 하다 얼어 죽은 존의 시체를 공원에 묻어주자는 여자노숙자 아니타가 등장한다. ‘안티고네’에서 크레온은 법질서를 앞세워 안티고네에게 처형령을 내리고 지하 감옥에 가둔다. ‘뉴욕 안티고네’의 경찰관 짐 머피 역시 노숙자들을 제재하고 단속한다. 하지만 연극은 단순히 ‘안티고네’의 이야기만을 현대적으로 담아낸 것은 아니다. 유일한 여자노숙자 아니타의 부탁으로 돈을 받고 가짜 존의 시체를 빼돌리는 노숙자 샤샤와 벼룩의 이야기도 더해졌다. 이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적 질서와 삶에 소외되고 있다. 작품은 이들을 제재하는 경찰관 짐 머피를 미국이라는 커다란 세계 중심을 표현함과 동시에 삶에 어깃장을 놓는 요소로 부각시켰다. 희랍극 ‘안티고네’가 ‘크레온’의 국가권력에 대항해 개인의 자유와 정의를 요구한 안티고네의 싸움이라면, 연극 ‘뉴욕 안티고네’는 ‘미국’이라는 세계 중심에서 주변부 밀입국자들의 생존 투쟁인 것이다. '미국'이라는 큰 굴레 안에서 인간을 파멸로 몰아가는 것이 다름 아닌 또 다른 인간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 노숙자들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벼룩'의 못돼먹은 심보는 ‘내가 가질 수 없으면 누구도 갖지 못한다’는 현대인들의 이기적인 잔인함과 희망을 잃어가는 고립된 인간의 모습이 안타깝다. jin@osen.co.kr 연극 ‘뉴욕 안티고네’와 ‘아일랜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