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성’, 신데렐라 스토리의 또 다른 행보
OSEN 기자
발행 2009.03.03 10: 15

‘신데렐라는 운명적으로 왕자를 만나고 우여곡절 끝에 행복하게 산다’는 결말은 그 동안 신데렐라 스토리를 표방한 드라마의 공식이었다. 과연 신데렐라는 결혼한 뒤 행복했을까. 1일 종영한 SBS TV ‘유리의 성’(최현경 극본, 조남국 연출)은 그 이후의 삶을 조명한 드라마였다. 제작진은 사랑이 전제되어야 할 결혼이 가족의 이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는 경우를 극단적으로 그려보며 가족과 가정의 역할을 보여주는 것을 기획의도로 내걸었다.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주인공인 방송국 신입 아나운서 민주(윤소이)의 삶과 결혼을 내세우고 있지만 드라마를 아우르는 핵심적인 전개는 권위주의 재벌가 회장인 김두형(박근형)과 그 자녀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김회장의 첫째 딸 준희(유서진)와 두 아들 규성(장현성)과 준성(이진욱), 그리고 첫째 며느리 유란(양정아)과 둘째 며느리 민주(윤소이)는 모두 김 회장의 계획 속에서만 움직여 왔다. 자아를 지키는 일과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는 삶 속에서 재벌가 식구들은 혼란스러워했지만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유리의 성’에 갇혀 지내는 쪽을 택했다. 준희는 김회장의 반대로 사랑하던 석진(김승수)과 결혼하지 못했고, 재회해서도 끝내 각자의 길을 선택했다. 준성은 형 규성의 국회의원 보궐 선거를 위해 형의 아이를 아내인 민주에게도 속인 채 자신의 아이라고 해야 했다. 유란은 남편 규성이 밖에서 낳아온 아이와 과거 사랑했던 형석(유태웅)의 아이를 출산한 채 그대로 재벌가에 지낸다. 드라마의 결말에서도 김 회장은 야망을 굽히지 못했다. 반면 민주는 준성과 이혼, 유란과는 대조적으로 ‘유리의 성’을 깨고 나온다. 민주의 식구들은 가난했던 시절로 되돌아가 다시 첫 걸음을 내딛는다. 드라마 속에서 민주는 기존의 전형적인 착한 신데렐라 캐릭터를 벗어난 인물이기도 하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힘으로만 아나운서의 꿈을 이뤄냈다는 성취감이 바탕이 돼 자기애가 강하고, 끝까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아 시댁 식구와 마찰을 빚는다. 이른바 변종 신데렐라 캐릭터다. 민주는 자신을 대하는 준성의 가족들의 태도에 자존심 상해하지만 반대로 준성의 입장에서보자면 민주 또한 모든 것을 자신의 중심으로만 생각한 바도 없지 않았다. 결국 드라마는 모두 각자의 삶의 방식대로 길을 걷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마지막 장면에서 석진과 민주의 핑크빛 여운을 남기기도 했지만 민주가 준성과 잘되기를 바랐던 시청자들은 이 같은 가장 현실적인 결말을 인정하면서도 아쉽고도 허무하다는 의견을 시청자 게시판에 속속 남겼다. 재벌가를 이분법적으로 묘사한 점도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단순한 신데렐라 스토리의 또 다른 이면을 그려내고자 했던 ‘유리의 성’은 고전의 재구성을 위한 작가의 고민이 엿보인 드라마였다. 하지만 극을 이끌어오던 세심한 구성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결말로 한 순간에 아쉬운 면을 남긴 점이 없지 않았다. 향후 또 다른 드라마에서 다뤄지게 될 재벌가의 이야기는 어떻게 한 단계 진화된 스토리를 선보일지 기대를 모은다. yu@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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